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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호림 칼럼니스트
권력의 성 지배와 착취 역사는 언제부터였을까? 구약레위기에는 반드시 죽여야 하는 죄 목록에 성범죄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남의 아내, 근친상간, 동성애, 짐승과의 교합 등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기록을 보면 성 착취는 기원전 2700년께 수메르 도시국가인 우루크를 통치했던 길가메시 왕으로 시작된다.

 그의 영웅적인 생애를 노래한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어떤 여자라도 마음만 동하면 그는 관계의 대상으로 삼았고, 결혼 첫날 밤에 신랑보다 먼저 신부와 동침하는 초야권을 행사한 역사상 첫 번째 인물로 알려졌다. 이런 관습이 고대 리비아와 중세 유럽의 영주들에 의해 답습돼왔으나, 아라곤왕국과 스코틀랜드와 같이 왕명으로 초야권을 폐지한 나라도 있었다.

 특히 15∼18세기 유럽의 여인들은 일상생활에서 성 약탈자들의 공격에 노출됐다. 어린 여자아이들은 결혼 지참금을 마련하기 위해 10년 이상 부유층에게 가사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이때 주인들의 성폭력을 피할 수 없었다. 더욱이 법원은 폭력이 행사되지 않는 한, 성 피해를 강간으로 간주하지 않았으므로, 원하지 않는 관계의 성 착취를 당하는 힘없는 여인들에게는 아무런 자기보호 장치가 없었다.

 한편, 티베트나 몽골에서는 라마교의 승려들이 이 첫날밤의 권리를 차지했으며, 몽골의 원나라가 한족인 송나라를 실질적으로 통치할 때 한족의 민란을 두려워해 그들에게 가한 여러 가지 제재의 도구의 하나로 초야권을 사용했다고 한다.

 하와이제도에서는 기독교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에는 서양식의 결혼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말에는 ‘남편’과 ‘부인’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을 정도로 보편적인 성 관념이 없었다고 한다. 결국 성은 족장들이 누리는 특혜의 대상이었다는 연구가 있다.

아프리카 자이레에서는 최근 몇 십 년 전까지도 모부투 전 대통령이 지방 출장 시에 관리들로부터 처녀들을 제공받았으며 가족들은 이를 오히려 큰 명예로 여겼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도 있다. 이처럼 권력의 성 착취 역사는 힘없는 여인들의 피해와 고통으로 씌어졌다.

 그러나 2017년 미국에서 영화제작사 사주인 하비 와인스타인에게 성폭력과 추행을 당한 80여 명의 유명 여자 배우들이 침묵을 깨고 고발하는 #Me Too(나도 당했다)운동 확산으로 인해 권력에 의한 성 착취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2017년 타임지는 그해의 인물에 성폭력 반대운동을 뜻하는 ‘침묵을 깨는 자들’을 겉표지에 실었고, 하비 와인스타인을 ‘영화제작자, 약탈자, 천박한 자’로 묘사했다.

오랫동안 할리우드에서 영화 권력자들에 의해 저질러지던 이러한 성 약탈행위는 ‘공개된 비밀’인 일상의 일로 여겨왔으나, 이제 ‘와인스타인 효과’에 의해 더 이상 성폭력은 수용할 수 없는 권력이 됐다. 2006년 한 사람의 사회 활동가에 의해 추진된 #Me Too 해시태그 운동은 10년이 지나서야 미국 사회로부터 호응을 얻기 시작했다.

 이제 난공불락의 성벽 같았던 이 나라의 음습하고 음란한 성 권력이 흔들리고 있다. 북한의 핵 위협으로 나라 전체가 전쟁의 위기에 노출된 엄중한 현실임에도 매스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한가롭게도 성 권력자들의 감춰진 비밀을 폭로하는 부끄러움뿐이다. 그 이름을 입에 올리기도 역겨운 노 시인, 권력과 가깝다는 연극연출가, 교수, 정의구현사제단 신부, 영화감독, 유명배우, 검찰, 대권주자였던 도지사 등 자고나면 새로운 폭력자들이 등장한다.

 마치 멸망을 앞둔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몸이 시키는 대로 조절장치 없이 충돌하는 단세포의 가슴과 머리에서 무슨 시와 문학과 예술과 성직자의 거룩한 영성과 선량한 정치력이 나올까? 그런데 지금까지 공개된 대부분의 성폭력 가해자들은 놀랍게도 문화예술계를 장악한 좌파 인맥의 권력자들과 충남지사이지만, 앞으로 이 바람이 어디로 어떻게 불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여기에서 왜 권력을 잡은 자들이 성적 충동에 탐닉하게 되는지 의문이 든다. 그 의문에 뇌신경심리학자들은 권력을 잡으면 뇌가 바뀐다고 했고, 키신저는 권력은 미약(최음제)이라고 했다. 권력의 의지는 성욕을 넘치게 하고, 그 권력을 확인하고 싶어 성폭력을 일삼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권력자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그들의 폭력으로 피해자의 인권과 인격이 무참히 파괴되고 짓밟히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권력자란 ‘을’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갑’을 말한다. 따라서 우리가 먼저 음습하고 음란한 이 땅의 성문화를 깨끗하게 청산해 도덕성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이 나라는 미래가 없을 것이다. 개인이 괴물과 같은 권력에 의해 파멸되는 사회와 이러한 불의가 지배하는 국가공동체는 내부로부터 온전하게 지켜질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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