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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승연 인하대 교수
‘통상(通商)’은 나라들 사이에 물품을 사고파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통상 규칙을 변경하려면 그 나라들 사이에 협상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절차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메리카 퍼스트’가 신념인 그는 미국의 강력한 힘을 무기로 상대국에게 일방적인 통보를 일삼는다.

 한미 FTA 재협상에 이어 미국은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패널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주요 수출 품목이기도 한 철강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일률적으로 25% 관세 부과를 선언했으며, 특허 침해를 이유로 반도체에 대해서도 수입제한을 할 기세다. 더 나아가 최근의 한국GM 사태는 GM본사의 글로벌 전략과 경영부실에서 온 측면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이 문제를 한국 자동차산업의 폐쇄성과 연관 지으며 압박을 가하고 있다.

 또 하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미국의 통상정책 변화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재가입 움직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취임 사흘 만에 TPP 탈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일본을 중심으로 한 11개 회원국들은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며 지난 8일 아시아-아메리카-오세아니아를 연결하는 대규모 경제공동체 발족에 정식 서명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좋은 조건이 제시된다면’이란 전제를 달긴 했지만 TPP에 복귀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트럼프의 입장 선회는 중국이 주도하는 또 다른 경제공동체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우리에게 문제는 한국이 RCEP에는 가입해 있지만 TPP에는 가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손오공이 여의봉 휘두르듯이 벌어지고 있는 트럼프의 일방적 통상정책은 우리를 많이 어지럽게 만든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 우리는 세계 통상질서의 슈퍼파워인 미국이 휘두르는 여의봉을 예의주시하며 최선의 전략과 준비로 대응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불합리한 미국의 보호무역 조치에는 당당하고 결연하게 대응하라"고 지시하며 WTO 제소 및 한미 FTA 위반 여부를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이러한 대응은 우리 국민들의 속을 시원하게 하는 효과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미국에게 응분의 타격을 주고 변화를 가져올 공산은 크지 않아 보인다. 앞으로 우리 정부가 해야 할 대응은 크게 세 가지로 생각된다. 우선 우리에게는 차분하며 냉정한 대응이 요구된다. 트럼프의 이해하기 어려운 돌출행동에 대해 우리도 감정적으로 대응한다면 전혀 실익이 없을 것이다. 더구나 통상과 안보를 분리해야 한다는 우리의 기대와 달리 트럼프는 이를 연계시킬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 안보가 위중한 상황에서 남북 및 북미 대화 등 모처럼 찾아온 안보 기회를 감안한다면, 통상에 있어서는 우리의 인내와 이성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우리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중국 주도의 RCEP에 가입해서 우리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일본이 주도하고 미국이 재가입할 가능성이 높은 TPP에도 우리가 가입 못할 이유가 없다. 미국과 일본에 대한 통상 측면에서의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우리나라도 TPP에 가입해야 한다. 이를 통해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경제통합 패권다툼에서 우리는 중국과 미국, 일본 사이의 균형 통상질서를 구축해야 한다. 끝으로 조속히 우리의 정부 통상 역량을 키워야 한다. 트럼프의 일방 통상정책을 뒷받침하는 미국의 통상조직은 그야말로 막강하다. 미국의 통상 전담조직인 미무역대표부(USTR)는 대통령 직속으로 인원만 300명이고 이 중에는 민간 로펌 등에서 활동하던 전문가도 다수 있다. 이번 한미 FTA 재협상과 철강 관세 부과에서 확인했듯이 미국은 상무부 장관 등 정부 핵심 인사들이 대거 나서 통상 압박을 주도하는 데 비해 한국은 차관급인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의 ‘1인 플레이’에 의존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는 게임이 안 된다. 통상교섭본부의 조직과 권한을 대폭 강화하고 다양한 분야의 통상전문가를 대거 양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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