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잘 정하면 승승장구하고 잘못 고르면 괴로움의 연속이다. 이 같은 일상다반사의 선택 중 만회하기 힘든 선택이 있다. 최대한 실패를 멀리해야 하며 적어도 나락은 피해가야 하는 선택들이다. 배우자를 정하는 일과 조직원을 선발하는 일이다.

 전자는 가히 개인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생일대의 선택이다. 결혼 전까지의 온갖 선택은 연습에 불과할 정도라고 단언할 만큼 큰 무게감을 지닌다. 후자는 조직의 명운을 좌우한다. 두 선택은 쌍방에 있어 평생의 꼬리표가 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결혼에의 선택은 새로운 사회적 법적 지위의 부여와 각고의 노력 없이는 평생 동화되기 힘든 ‘시월드(媤宅·World)’와 ‘처월드(妻家·World)’로의 진입을 뜻한다. 조만간 2세가 태어나면 건널 수 없는 강을 마저 건너는 셈이다. 여기서부터는 선택에 대한 번복도 백도(윷놀이 용어)도 없다.

 조직원 선발도 마찬가지다. 넓은 의미에서 조직과 사람 간의 사회적 계약, 즉 결혼인 셈이다. 능률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불화를 양산하고 해사(害社) 행위를 일삼는다면 계약을 파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려고 그가 자발적으로 입사한 것도, 조직이 그 꼴을 보겠다고 3차 심사를 거쳐 그를 선발한 것도 아닐 테다. 신입 조직원이 ‘산업 스파이’일 리 없다.

 이토록 중대한 ‘사람 선택’의 최소·최대의 기준은 무엇인가. 단연 ‘변화가능성(Potential for change)’이다. 쌍방간 의사는 당연히 소통돼야 하고 소통 이후에 변화의 조짐도, 실체적 변화도 없다면 그 선택은 나락과 가깝다. 결혼이라는 새로운 그릇에, 조직이라는 새로운 틀에 부응하기를 거부하는 ‘아집(我執)’은 번복할 수 없는 결정적 선택을 후회로 물들인다.

 다자간 합의와 다수의 공감대를 얻은 ‘개선안’을 끝내 수용하지 않는 그를 처리할 방법도 없다. 이혼이, 해고가 말처럼 쉬운 일인가. 변화가능성이 없는 그가 상대방의 줄기찬 변화 요구에 잠시 수용하는 척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내 습성으로 되돌아가는 그다. 변화가 쉽지 않은 것은 변화가 한 존재의 습성과 이유까지 흔들어 놓기 때문이다. 변화 당사자가 유쾌하지 않다는 말이다. 하지만 변화가능성이 없는 상대방을 선택한 당신은 평생 불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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