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령도 내 심청각 옆에 세워진 시비에 고은 시인의 헌정시 ‘백령도에 와서’가 새겨져 있다. <독자 제공>
▲ 백령도 내 심청각 옆에 세워진 시비에 고은 시인의 헌정시 ‘백령도에 와서’가 새겨져 있다. <독자 제공>
인천시가 최근 성추행 파문으로 문제가 된 고은 시인의 흔적을 놓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서해 최북단 섬이자 인천의 대표 관광지인 백령도에 설치된 고은 시인의 ‘시비(詩碑)’ 때문이다.

13일 시와 인천도시공사에 따르면 2015년 5월 백령도 내 심청각 옆에 고은 시인의 헌정시 ‘백령도에 와서’를 새긴 시비를 설치했다. 시비 설치 당시 효녀 심청을 소재로 시를 집필 중이었던 그의 제안에 따른 것이다.

고은 시인은 인천과 유독 인연이 깊다. 그가 시인이 되기로 결심한 것도 인천의 대표 시인인 한하운 선생의 시를 보고난 이후였다. 청년 시절에는 강화 전등사에서 주지를 맡기도 했다. 이 같은 인연으로 백령도 시비 제작을 제안했다.

고은의 제안을 받은 도시공사는 예산을 들여 백령도 심청각 옆에 시비를 설치했다. 백령도를 안보관광지뿐 아니라 문학이 깃든 관광지로 부각시켜 섬 관광을 활성화시키겠다는 취지였다. 2015년 5월은 인천관광공사가 도시공사에서 분리되기 전으로, 도시공사 관광사업본부가 시비 설치를 담당했다.

문제는 도시공사와 관광공사 분리 이후 관리 주체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최근 고은 시인의 성추문 파문이 벌어진 이후에도 시비 처리를 놓고 책임지려는 기관이 전혀 없다.

인천시 담당 부서는 백령도에 고은의 시비가 설치된 사실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취재가 시작되고 나서야 사태 파악에 나섰다. 도시공사와 관광공사 역시 서로가 자신의 업무가 아니라며 발뺌만 하고 있다.

관광공사 관계자는 "관광공사가 출범한 2015년 9월 11일 이전 도시공사에서 진행한 업무는 도시공사가 책임지는 것으로 돼 있다"며 "따라서 2015년 5월 설치한 고은 시비도 도시공사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일축했다. 반면 도시공사 관계자는 "우리는 백령도에 고은 시비가 설치된 줄도 몰랐다"며 "지역의 관광과 연관된 콘텐츠라면 관광공사에서 담당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시 관광부서 담당자는 "당초 고은 시비 설치 예산이 도시공사에서 편성돼 철거하든 놔두든 도시공사에서 알아서 해야 한다"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못 박았다.

이병기 기자 rove0524@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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