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 시대를 맞아 경기도 수원시가 새로운 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있다. ‘수원 시민의 정부’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자치단체’와 ‘정부’. 이들은 서로 대척점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험의 목표는 간단하다. 자치단체 안에 ‘시민이 주인이 되는 작은 정부’를 세우겠다는 것이다. 혹자는 지자체가 정부를 수립한다는 게 말이 되냐고 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시는 이 실험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한 단계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본보는 수원 시민의 정부 활동에 대해 살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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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 19일 수원시는 시청 중회의실에서 ‘자치분권 로드맵 현장토론회’를 열고 자치분권 추진 방향을 모색했다.
# 새로운 지방정부를 꿈꾼다

수원시는 지난해 1월 2일 수원역 대합실에서 신년 하례식을 열고 ‘수원 시민의 정부’를 추진하겠다고 선포했다. 실질적 시민주권시대 실현을 위한 야심찬 계획이다. 신년사에서는 ‘시민의 정부’ 개념을 제시했다. "시민 참여로 시민 주권이 시정 곳곳에 모세혈관처럼 흐르고, 협동의 자세로 공동체 과제 해결에 힘을 모으며, 포용의 정신으로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정부"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실험의 배경에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촉발된 2016년 겨울을 밝혔던 ‘촛불 집회’가 밑바탕이 됐다. 시는 "촛불 민심은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오직 주권자인 시민의 뜻에 따라 정치를 하라는 명령"이라며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정부의 근간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시는 시민의 정부를 만들기 위해 구체적인 시민 참여와 협치 정책을 추진했다. 지난해 ‘시민의 시대, 수원 시민의 정부’를 주제로 2회에 걸쳐 포럼을 열고, 온라인 정책 토론방 ‘수원 시민의 정부 아고라’를 운영했다. 이를 통해 시가 추진하는 14개 핵심 사업에 대한 시민 의견을 수렴하고 시민 370여 명이 ‘아고라’에 댓글로 정책을 제안했다.

또 16차례에 걸쳐 시민이 참여해 주요 정책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는 ‘수원시민의 정부 정책토론회’를 열어 시민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시민 의견과 전문가 제안을 바탕으로 지난해 9월에는 수원 시민의 정부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기본계획에는 ‘유쾌한 참여’, ‘올바른 협치’, ‘따뜻한 포용’을 시민의 정부 3대 가치로 정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9대 전략을 수립하고, 49개 세부과제도 설정했다. ‘유쾌한 참여’는 시민 주권을 바탕으로 시민들이 일상에서 시정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올바른 협치’는 월권과 간섭을 배제한 ‘존중과 상생’의 협치를 구현하는 행정이다. ‘따뜻한 포용’은 약자를 배려하는 포용 공동체를 만들고,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사회복지 시스템이다.

각 부서마다 연도별 세부 추진계획을 수립한 뒤 이를 추진 중이다. 지난해 11월에는 누구나 쉽게 정책을 제안하고,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시정에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인 ‘수다플랫폼’(www.sooda.or.kr)을 열었다. 이 플랫폼은 ‘정책 제안’과 ‘원탁토론’으로 구성된다. ‘자유 토론방’에 정책을 제안하면 다른 이들이 클릭으로 정책 제안에 대한 선호·비선호 의사를 표현하고 댓글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선호가 비선호보다 5개 이상 많은 정책은 담당 부서로 이관돼 ‘제안 보충’ 과정을 거친다. 담당 부서는 실무심사위원회를 꾸려 시민이 제안한 정책을 심의하고, 채택된 정책 제안은 최종적으로 시민들 투표를 거쳐 실행 여부를 결정한다. 사안에 따라 ‘원탁 토론’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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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1월 27일 수원시청 대강당에서 ‘2017 수원 시민의 정부, 시민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이 발언하고 있다. <수원시 제공>
# 2018년은 ‘시민의 정부’가 뿌리 내리는 해

시는 지난 한 해가 시민의 정부 근간을 만든 시기였다면 올해는 시민의 정부를 시정 곳곳에 뿌리 내리는 해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지난 5일에는 행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예방하고, 시민의 행정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정책을 기획하기 전 주요 사항을 점검해 볼 수 있는 ‘오류를 깨는 13가지 협업리스트’를 만들었다.

이 리스트는 조직 내부 협업으로 업무 능률을 높이는 데 필요한 ‘내부 협업 항목’ 9개와 시민·전문가 참여를 높이기 위한 ‘민관 협치 항목’ 4개 등 13개 항목으로 이뤄져 있다.

모든 부서는 정책 수립 전 계획서를 만들 때 반드시 협업 리스트를 작성하고, 해당 항목 검토 여부를 점검해 정책기획에 반영해야 한다. 수원시민자치대학은 시민의 자치 역량을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시민자치대학만의 학습자 중심 교육 모형을 개발해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교육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수료생 1천40명(총 27개 과정)을 배출했다.

올해는 ‘마을 계획 수립과정’, ‘자치분권 과정’ 등 생활밀착형 교육과정을 운영할 계획이다. 또 역량 있는 시민을 강사로 발굴해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선순환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수료생이 일일 강사가 되는 ‘나도 자치대학 강사’ 과정을 2학기에 운영한다. 시는 시민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시민 자치헌장 조례’, ‘협치 기본조례’ 제정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시민 참여로 만든 ‘시민 자치헌장 조례’는 전문과 시민의 권리, 자치권 등 17개 조항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 2월 이를 입법예고한 데 이어 다음 달 중으로 공포한다.

‘협치 기본조례’는 이달부터 4월까지 두 달간 시민 의견을 수렴하고, 7월에 시민 토론회를 거쳐 올해 하반기에 공포할 계획이다. 지난해 11월부터 시범운영 중인 온라인 ‘수다플랫폼’은 올해 안에 정식 운영을 시작한다. 현재 흡연자를 위한 흡연부스 설치와 수원화성 디자인특구 조성, 수원종합운동장 사전 주차예약제 개선’ 등 정책 제안 12개가 올라왔다.

강건구 수원시 정책기획과장은 "올해는 ‘시민의 정부’가 더욱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만들어 가겠다"며 "많은 시민이 ‘시민의 정부’를 만드는 데 함께 동참해 주길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박종대 기자 pjd@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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