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식.jpg
▲ 김윤식 시인

대불(大佛)호텔에 관련해서는 윤치호(尹致昊)의 영문 일기를 비롯해 몇 가지 흥미를 끄는 이야기들이 있다. 특히 인천에 있던 일본영사관이 이 호텔에 드나드는 인물들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내용도 있다. 일본영사관은 1900년 6월 법부(法部), 내부(內部), 농상공부(農商工部)의 주사 3명과 인천감리(仁川監理)가 대불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거나 영국군 육전대(陸戰隊) 150명이 5∼6일분 식량을 이 호텔에 주문했다거나 하는 내용을 낱낱이 탐문했던 것이다.

 1897년 3월 25일자 윤치호의 일기는 상하이에 가기 위해 오전 6시에 일어났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오전 8시 30분에 서울을 출발해 오후 5시, 무려 8시간 반 만에 제물포에 도착해 대불호텔에 묵었다고 적고 있다. 무엇보다 "대불호텔에서 민영환 씨 형제를 만났다. 저녁식사 후 민영환 씨 형제는 내 방에서 머리를 잘랐다. 두 사람은 제물포 신문의 정세 논평에 대해 불필요할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했다"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한국사에 길이 남을 인물 충정공(忠正公) 민영환(閔泳煥)이 인천의 대불호텔에 묵었다는 사실이다.

 윤치호가 말한 민영환의 형제는 다름 아닌 친동생 민영찬(閔泳瓚)이다. 외국어를 전혀 못하는 민영환이 주불(駐佛), 주벨기에 공사를 지낸 동생을 통역관으로 동행시켰던 것 같다. 흥미로운 것은 저녁 식사 후 윤치호의 방에서 두 형제가 머리를 잘랐다는 부분이다. 이발사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형제가 서로 잘라 주었다는 것인지, 고관 신분이었던 사람들로서는 썩 보기 드문 광경일 듯싶다. 그리고 왜 하필이면 윤치호의 방에서인가. 또 제물포 신문의 정세 논평에 필요 이상으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는 점에서도, 을미사변(乙未事變)을 겪은 데다가 일본의 온갖 간상(奸狀)을 대하고 있던 민영환으로서는 당연한 태도였을 것이다.

 아무튼 윤치호는 그 다음 날 수진여관(水津旅館)으로 옮기고 민영환 형제는 대불호텔에 머물다 28일 정오에 함께 제물포를 출항한다. 이들은 청국 지부(之부)를 거쳐 상하이까지의 여행에 동행해 4월 10일에야 헤어진다.

 대불호텔에 관련한 또 다른 이야기는 안경수(安경壽)에 관한 것이다. 안경수는 1898년 황제양위(皇帝讓位) 음모에 가담했다가 발각돼 일본으로 망명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1900년 2월 7일 망명을 끝내고 인천항에 들어와 대불호텔에 묵는다. 일본영사관은 그날 그의 동정을 다음과 같이 서울 공사관으로 보고한다.

 "안(安)은 예정대로 오늘 아침 장문환(長門丸)으로 인천에 도착하여 무사히 대불호텔에 상륙했음. 다만 통역생을 시켜 자세한 방침 등을 전하고 아무런 보호도 해줄 수 없다는 취지까지도 전했는데 안이 곤란한 모양임. 이번 귀국은 일본에서도 전도(前途)의 가망이 없고 한편에서는 동인에 대한 한국 조정의 의향도 약간 관대하게 기울어졌다고 듣고 있으니 어쨌든 일단 귀국하여 요로(要路)의 인물에게도 사정을 호소하여 국왕의 특사를 청할 생각임."

 그는 일본에서 전도가 불투명해 고심하다가 "한국 조정의 의향도 약간 관대하게 기울어졌다"는 판단 아래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입국했던 것이다. 영사관 측 보고는 그가 2∼3일간 묵으며 "자수해서 무죄를 변명하여 처분을 바라거나 다시 장문환 편으로 일본으로 돌아가거나 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어쨌거나 목숨이 걸린 일이니 안경수는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안(安)도 결심했다고 하면서도 공포에 질려 있는 것도 사실이므로, 대불호텔 내실의 출입구 개폐에도 신경을 쓰고 단총(短銃)을 항상 몸에 지니고 있으며 매우 주의하고 있습니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다시 일본으로 가고 싶다고 당관(當館)의 형사, 순사에게 몰래 말한 일도 있습니다"라고 영사관 보고서는 쓰고 있다.

 결국 안경수는 일본공사 하야시(林權助)의 주선에 따라 공정한 재판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자수한다. 그러나 1894년 이준용 역모사건(李埈鎔逆謀事件)을 고하지 않은 죄와 황제양위사건 죄까지 합쳐져 교수형에 처해진다. 안경수는 한때 인천전환국 방판(幇辦)으로도 있었는데, 그때 그가 살 집으로 지은 솟을대문의 한옥이 중구 전동 24에 남아 있었다. 옛 대불호텔 자리에 새로 지은 대불호텔전시관이 개관한다고 한다. 호텔과 관련해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다른 이야기들도 인천 역사의 일면으로 살아나기를 기대해 본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