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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사연 수필가
마포구 소녀상건립추진위원회가 홍익대 앞에 소녀상을 설치하려던 계획이 홍익대학교 측과 학생, 그리고 주변 상인들의 반발에 부딪쳐 무산되고 말았다. 학교 측은 이미 지난달 26일 마포구청에 소녀상 설치 반대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소녀상 설치를 반대하는 첫째 이유는 건립추진위원회가 주변의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했다는 데 있다.

아마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당연히 소녀상 설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대의명분을 앞세웠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주변의 여론은 그렇지만도 않았다. 대학 정문에 특정 국가 국민이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은 국제적인 대학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라며 학교 측과 학생들은 반대했다.

 홍대 앞 상인들 역시 일본을 비롯해 다국적 관광객을 끌어들여 국제상권을 조성해야 하는 마당에 소녀상 설치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반발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종군 위안부 역사를 부정하는 친일 매국노는 아니다. 그들 역시 대한국민의 자존심상 차마 글로 밝히지 못하는 명성황후의 참담하고 능욕적인 시해 사건과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혹독하게 고문한 일제의 만행에 거부감을 갖는 한국인 중 하나다.

얼마 전 ‘귀향’이라는 영화를 통해 종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슬픈 역사를 되새겨 볼 수 있었다. 영화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의 성노리개로 끌려간 수많은 조선의 여인들이 어떤 치욕의 삶을 살았을까 회한에 잠기게 한다. 위 두 영화를 감상한 후 처음엔 침략자를 원망했지만 이내 "우리 조상들은 왜 바보처럼 당하기만 했는가? "자조 섞인 한숨이 길게 나왔다. 해답은 단 한마디, 국력이 약했고 수없이 침략을 당하고도 반성하지 않고 대비책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내 민간단체는 일제의 만행을 결코 잊지 말자며 적지 않은 돈을 모금해 여기저기에 소녀상을 설치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굳이 한·일 간 갈등과 지역 주민과의 분란을 일으키는 소녀상을 앞세우지 않고도 보다 현명한 방법으로 일본으로부터 더 큰 실리를 챙길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전시효과적인 소녀상과 노란 리본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결연(決然)한 다짐과 미래지향적인 정책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얼마나 많은 노란 리본이 제작돼 재발방지를 경고하며 이 나라를 슬픔에 잠기게 했던가. 그 노란 리본 덕분에 이 나라의 바다와 하늘과 땅엔 절대로 인재로 인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세월호 사고 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고 어느 희생자 유족은 절규했다. 정치인들은 소녀상과 노란 리본을 정쟁(政爭)과 정권의 수단으로 이용하지 말고 국민이 납득하고 만족할 만한 재발방지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일제의 침략과 만행을 몸으로 겪은 민족이 어찌 우리 하나뿐인가. 가미가제 자살 특공대에 진주만 기습을 당한 미국, 학살·강간·방화로 30여만 명이 희생당한 중국 난징 대도살 사건, 그리고 대동아전쟁권에서 일제의 핍박을 당했던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들도 우리와 동병상련을 앓고 있다.

하지만 그들 국가들은 소녀상을 설치하는 등 과거사에만 집착하지 않고 오히려 실리적인 외교를 강화해 자국의 경제 부흥을 꾀하고 있다. 우리도 과거의 역사를 징검다리 삼아 후손들이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 넉넉하고 평안한 미래를 누릴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북핵 위협, 중국의 사드 보복과 미국의 자국민 보호무역 정책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일본 정부의 진정한 참회와 사과가 없다는 이유로 민간단체는 곳곳에 소녀상을 설치하고 정부는 외교관례를 무시한 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한다. 숲만 보지 말고 나무도 보아야 하듯 과거사의 감정에만 연연하지 말고 냉철한 이성을 되찾아야 현실의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은 동지가 될 수 있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 국민이 그 어떤 국가로부터도 침략과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미래지향적인 정책 마련에 민·관이 힘을 합쳐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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