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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남례 인천 W아너 소사이어티 클럽 회장
우리나라는 복지국가를 지향하면서 사회 양극화 현상 완화, 저출산·고령화 대비 등 복지 분야의 재정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열악한 정부 재정으로는 감당하기가 어렵다. 급증하는 복지수요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부문의 참여와 역할이 점차 중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따라서 사회양극화 완화와 계층 간 위화감 해소를 위해서는 민간이 참여하는 기부문화 활성화가 더욱 절실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을 자랑하면서도 기부지수는 75위로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양에는 높은 사회적 계층 사람들이 기부나 봉사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도덕적 의무를 다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이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프랑스어로 노블레스는 ‘고귀한 신분(귀족)’이란 뜻이고, 오블리주는 ‘책임이 있다’는 의미이다.

신분에 따르는 여러 가지 특권을 향유하는 것에 상응하는 도덕적 임무를 다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는 용어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지금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사회지도층의 책무’ 즉, 부나 권력 또는 명예를 갖고 있는 지도층의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책임과 의무, 솔선수범의 자세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와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데 따른 지적이다.

 물론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경제적 안정을 누리는 이른바 권위계층이나 부유층의 전유물일 수는 없다. 하지만 부와 지위를 가지고 있는 인사들이 정당하게 대접받기 위해서는 명예만큼 의무를 다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서양의 사례에 버금가는 경주 최 부자의 이야기는 진정한 이 땅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최 부잣집은 왜구와 청나라의 침입을 물리치며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최진립에서부터 일제강점기 나라의 독립을 위해 전 재산을 내 놓은 최준에 이르기까지 300여 년 동안 선을 쌓고, 광복 이후에도 전 재산을 기부해 학교를 세우기까지 했다.

 이러한 정신은 최 부잣집의 ‘육훈(六訓)’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재산은 만 석 이상 지니지 마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마라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최 씨 집안이야말로 나눔의 기쁨이 무엇인지, 가진 자들이 진정 실행해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 알고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미덕을 직접 실천한 모범적인 본보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18세기 말 제주에 5년간 흉년이 들자 사재를 털어 도민을 구호한 김만덕(金萬德)은 우리 역사상 최고의 여성 CEO로서, 숭고한 ‘나눔과 베풂’의 삶을 몸소 실천한 분이다.

 우리에게도 본받을 만한 이런 조상들이 있다는 자부심과 함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박애정신이 흐르고 있음에 새삼 뿌듯해진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농사일이 바쁠 때 서로 일손을 도와주는 두레와 품앗이 같은 미풍양속이 있다. 대기업이 자선단체를 운영하고 거액을 기부하는 것에서부터 수익금 중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기업, 막일이나 좌판으로 평생 모은 돈을 내놓고 어려운 이를 돕는 이웃 등등. 나눔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모습들을 볼 수 있다.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라는 생각에서 우러난 자발적 행동이다. 우리 주변에는 소년소녀가장, 장애가족, 난치병 환자가족, 홀몸노인가정 등 힘든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가난해서 공부를 할 수 없거나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나눔이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것이다.

또한,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와 내 이웃,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 사회를 위한 것이다. 많이 가져서가 아니라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다.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는 말에서 진정한 나눔의 의미를 새겨보자. 사회지도층부터 솔선수범에 나서야 한다. 더불어 살면서 서로 즐거움을 나누는 사회가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이상향(理想鄕)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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