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민속 5일장은 서울과 수도권 등 전국에서 최대 10만 명이 찾는 성남의 명소다. 사람만큼이나 물품 종류도 많다. 대한민국 대표 만물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산업화 이후 활성화된 상설시장과는 다르게 전통시장의 명맥을 유지하는 민속시장이기도 하다. 그 중심에는 상인들이 있다. 상인들은 모란장이 서지 않는 날에는 양평이나 원주·횡성·안성 등 전국 각지로 흩어져 5일장을 연다. 모란장이 열리는 날에는 다시 모여 장사를 한다. 이동 수단만 다를 뿐 장날마다 전국 팔도를 두 발로 다닌 보부상(褓負商)의 후예라 할 수 있다. 도붓(到付)장수·행고(行賈)·여상(旅商)·장꾼 등이 여기에 속한다.

성남시의 지리적 특성이 맞물려 도시빈민으로 시작한 애환(哀歡)이 우리 고유의 전통시장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셈이다. 본보는 성남 모란시장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시장 상인들의 자구 노력을 짚어 본다.

▲ 지난 14일 오후 모란 민속5일장에 인파가 몰려 북적이고 있다. 성남=이강철 기자 iprokc@kihoilbo.co.kr
# 볼거리와 먹을거리, 이야기가 가득한 모란장터. 한국 넘어 세계로 향하다

 ‘없는 거 빼고 다 있다’는 말은 다녀간 사람은 다 아는 얘기가 됐다. 끝없이 펼쳐진 좌판 행렬, 다양하고 신기한 품목들, 이를 사려는 인파에 입이 벌어진다. 모두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 다른 시장에선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살아 있는 토끼와 새, 흑염소, 애견을 만져 볼 수 있고 오골계나 생소한 한약초들도 많다. 전통 민속공예품부터 보양식으로 쓰이는 자라, 잉어, 가물치도 생물로 살 수 있다. 전국 특산품 집합소이기도 하다. 무안 양파, 제주 콜라비, 금산 인삼, 공주 밤, 상주 곶감, 성주 참외, 의성 마늘, 여주 땅콩, 횡성 달걀, 포항 시금치 등을 현지에서처럼 구입할 수 있다. 옛 방식으로 제작되는 뻥튀기, 직접 맷돌로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드는 상인, 떡메를 내리치는 상인들도 볼거리이다.

 먹거리도 빠질 수 없다. 칼국수와 찹쌀도너츠, 파전, 명물인 가마솥통닭 등은 한가한 시간에도 사람이 넘쳐 장사진을 이룬다. 여기에 흥겨운 노래와 함께 열리는 품바 공연은 이곳이 아니면 접할 수 없는 구경거리다. 특히 성남시민만 안다는 도심 속 시골 장터 인심도 느낄 수 있다. 오후 3시 이후부터는 그날 상황(?)에 따라 흥정도 가능하다. 말만 잘하면 덤은 기본이요, 흥정은 정(情)이다. 이렇게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장터의 활성화를 위해 상인회는 외국인 등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이 꿈이다.

▲ 전성배 모란상인회장
 전성배(9대)모란상인회장은 "사시사철 팔도 특산물과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모란장이 시와 정부의 지원 속에 문화관광 분야와 연계된다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인 명소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 고유의 장터를 관광코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저를 대표한 모든 상인들의 작은 바람"이라고 말했다.

# 성남의 역사와 함께 해 온 모란장

모란장은 1962년 당시 광주군 대원천변(옛 모란예식장에서 풍생고교 앞) 주변에 난전(亂廛)이 들어서면서 형성됐다. 육군 대령 출신의 초기 이주자 김창숙 씨가 황무지 개간사업을 벌이다 주민들을 위한 생활필수품 조달과 소득 증대를 위해 시장을 열었다. 시장 이름은 그의 고향인 평양 모란봉 이름을 따서 모란(牡丹) 민속장으로 지었다고 전해진다. 1968년부터는 서울 철거민들이 이주하면서 급격한 도심화가 이뤄졌고, 곳곳에 시장이 개설되며 경제활동 인구도 증가했다. 그러나 피란민들 중심의 상권은 상설시장 형성에 어려움이 따랐고, 현재의 5일장으로 운영된다.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건 1980년대 이후부터다. 고추와 식용견, 오리 등이 인기를 끌면서 성장하기 시작했고, 계절별로 전국 팔도 특산물이 자연스럽게 모여들었다. 모란 가축시장에는 개 도축장이 있어 한때 하루 평균 220여 마리, 한 해 8만여 마리의 식육견이 거래되기도 했다.

사통팔달 교통이 좋고, 서울에서 가까운 대단지 전통시장이라는 점도 장날 구름인파를 몰리게 했다.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 구경꾼이 뒤엉켜 통행조차 힘겨웠을 정도다. 이후 인근으로 두 차례 더 이전 후 1990년 대원천 하류가 복개되자 상인 953명이 모여 종전 장터에 자리잡아 오늘날에 이르렀다. 한 집 건너 하나씩 있다는 기름 골목이 형성된 것도 이 시기다.

하지만 개와 염소, 닭 등을 산 채로 진열·판매하면서 소음과 악취에 따른 민원이 제기되기 시작했고, 동물보호단체들도 개시장 폐쇄를 요구하며 갈등을 빚어 왔다. 이에 시는 지난해 7월 TF를 신설, 630억여 원을 들여 상인들과 함께 장터 이전 및 모란 가축시장 환경정비를 동시에 추진하며 말 많던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 옛 모란민속5일장 장터 모습. <성남시 제공>
# 모란장 56년을 돌아 새 둥지를 틀다

모란 민속5일장은 지난달 24일 중원구 성남동 여수공공주택지구 내 부지로 새롭게 이전 개장했다. 종전 장터에 들어선 지 28년, 모란장 역사가 생긴 이래 56년 만이다. 5일장은 현행대로 끝자리 4일과 9일이 낀 날에 열린다. 1년 중 72일 정도 장이 선다.

평소에는 총 603대의 차량이 주차할 수 있는 공영주차장으로 활용된다. 종전보다 2배 가까이 커진 2만2천575.5㎡ 규모에 상인 635명이 입점해 있다. 전국 최대 규모다. 기존 장터에 없던 고객 화장실(3동), 광장 공연장, 휴게공간 등 시민들의 불편사항으로 지적됐던 편의시설도 들어섰다. 상인들의 숙원이었던 야간 조명탑과 수도, 전기 등의 현대적 시설도 갖췄다.

고객 유입 동선을 예측한 입체형 배치도 눈에 띈다. 진입부는 이동이 불편한 시민을 위한 할머니 장터가, 중심부는 고객들이 많이 찾는 농수산품, 악취와 바닥 물고임 등이 발생하는 가금류나 수산, 애견 등은 좌측 외곽에, 높은 진열 행태가 필요한 화훼나 의류는 좌우 외곽에 배치됐다. 먹거리촌은 가장 안쪽(끝)에서 운영된다.

 다닥다닥 붙었던 기존 노점도 거리가 넓어져 인파가 몰려도 통행에 큰 불편은 없다. 가축의 분뇨와 부산물 등 악취가 풍기던 점포들은 종전 장터(상설시장)에 남아 환경정비를 마친 상태로, 더 이상 코끝을 자극하던 특유의 냄새도 나지 않는다.

 관리는 시장 활성화를 위해 성남시 상권활성화재단이 맡는다. 상인별 맞춤형 교육을 통한 관광객 등 폭넓은 고객층 확보가 주요 목표다. 재단 직원들이 장날만 되면 이른 아침부터 출근해 시설 점검 등 상인과의 소통을 이어가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성남시 상권활성화재단 김상환 본부장은 "모란 민속5일장이 전 국민이 찾는 명소가 되고 더욱 활성화돼 외국인 등 다양한 계층이 찾도록 상인별 교육과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공설시장의 선도 모델이 될 수 있도록 상인들과 잘 운영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성남=이강철 기자 iprokc@kihoilbo.co.kr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