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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십여 년 전, 코펜하겐의 미래학 연구소에서 정보화 사회 다음에는 어떤 사회가 도래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가 심도 있게 진행되었습니다. 연구 결과는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로 드러났습니다. 드림 소사이어티는 ‘꿈과 감성과 이야기가 주도하는 사회’입니다. 과거에는 기능성이 뛰어난 상품을 골랐지만, 오늘날에는 기능성을 높일 수 있는 기술력이 대체로 비슷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품 속에 ‘꿈과 감성, 그리고 이야기’가 들어 있는 상품을 선택하곤 합니다. 광고업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과거에는 기능의 우수성을 광고했지만 이제는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내용으로 광고합니다. 이런 경향은 회사도 같습니다. 우수한 기업 이미지를 갖춘 회사라고 해도 CEO의 추접한 행위가 드러나면 그 순간 회사의 주가는 뚝 떨어집니다.

그래서 회사들은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여러 가지 봉사활동 등을 하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겁니다.

 미국 최고의 정보통신 관련 기업의 이야기가 가슴을 울립니다. 출근시간이 돼 그 회사 사장이 빌딩 앞에서 내렸습니다. 그가 평소처럼 중앙의 현관 계단을 오르려고 할 때, 경비원이 그를 막아서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ID 카드를 제시하지 않으면 출입이 안 됩니다."

 그 사람이 사장인 줄 알면서도 신분증을 요구한 그 경비원은 융통성이 없는 경비원일까요, 아니면 원칙을 지키는 든든한 경비원일까요?

 여기까지도 이야기가 충분히 되지만, 더 감동적인 것은 그 다음 날 일어났습니다. 경비원이 출근해서 평상시처럼 일하고 있던 그때, 경비부서 책임자로 승진했으니까요. 사장 또한 감동의 주인공이 될 충분한 자격을 갖춘 겁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세상에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고객들의 회사에 대한 신뢰지수는 높아지겠지요. 이것이 바로 감동적인 이야기가 주는 선물일 겁니다. 더 감동적인 것은 아름다운 전통으로 자리매김한다는 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책에 1852년 영국 수송선인 버큰헤이드호에 얽힌 사연이 있습니다.

 영국 해군의 자랑인 버큰헤이드호는 병사들과 그들의 가족을 데리고 남아프리카로 항해를 하던 중 바위와 충돌해 침몰했습니다. 배에는 모두 630명이 탔는데 그 중 130명은 여성이었습니다. 침몰지역은 식인상어들이 우글거리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60명이 탈 수 있는 구명정은 3척밖에 없어서, 고작 180명만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누구를 구명정에 태워야 할까요? 630명 모두가 살아야 할 이유가 있었을 텐데요. 드디어 함장인 시드니 세튼 대령은 구명정에 여성과 어린이들을 태우는 병사들을 제외한 모든 병사들을 갑판 위에 모이게 하고 부동자세로 경례하게 했습니다. 마지막 구명정이 떠날 때까지 병사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경례하고 서 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이나 아내, 존경하는 부모님, 너무도 보고 싶은 어린 자녀들이 구명정에 실려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영원한 이별을 마주하고 있는 겁니다. 한편 구명정에 실려 떠나가는 가족들은 어땠을까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며 절규했을 겁니다.

 배는 서서히 가라앉고 병사들 역시도 차디찬 바닷물 속으로 자신의 목숨을 맡겼습니다. 대신 사랑하는 가족들을 살린 겁니다. 무려 436명이 수장됐다고 합니다. 시드니 세튼 사령관도 함께 말입니다. 사실 그 이전까지는 조난을 당하면 자기 목숨부터 구하기 위해 큰 소동이 일어났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영국 전역에 전해지고 난 다음부터는 새로운 전통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위기 시에는 여자와 어린이 먼저 구하라!’라고요. 이 글을 쓰면서 작은 소망 하나가 생겼습니다. 매일 아침 접하는 뉴스 거리들이 아름다운 이야기들로 더 많이 채워졌으면 하는 소망이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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