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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덕우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서구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열강들이 해외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는 계기로 작용했다. 19세기 중엽의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중국, 일본, 조선 등 동북아 3국은 그 피해자로 전락하게 됐는데, 중국은 아편전쟁과 애로우사건을 겪으면서 영국과 프랑스의 연합군에게 1860년 북경이 함락되는 수모를 겪었다. 일본 역시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굴복해 1858년 미일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면서 개항했다. 조선도 예외는 아니어서 병인, 신미양요의 참화를 겪고 급기야 일본으로부터 1875년 군함 운요호의 포격을 당했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위기를 맞게 된 한·중·일 삼국은 무기를 중심으로 한 기술의 위력을 알게 되면서 어떤 형태로든 서구 문명을 수용하는 논리를 만들어내야만 했다. 그리하여 도덕과 사상 등 자신의 전통문화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서양의 과학기술만을 수용하는 방법을 모색하게 됐다.

이른바 중국에서 양무운동(洋務運動)의 기치로 내세운 ‘중체서용론(中體西用論)’, 일본의 개화론자들이 내세운 ‘화혼양재론(和魂洋才論)’ 그리고 조선의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이다. 서용(西用), 양재(洋才), 서기(西器) 등은 모두 부국강병과 근대화를 통해 국내외의 위기를 타개하려는 목적이었다. 중국은 군수 공업을 발전시키고 육군과 해군을 양성했으며, 신식 학교를 설립하고 석탄, 제련, 방적, 철도 등의 분야에서 근대적 기업을 만들었다.

 그러나 1894년 청·일 전쟁의 패배로 양무운동의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반면 일본은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통해 서구식 체제로 근대화를 재촉해 나가면서 청국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탈아입구(脫亞入歐)’ 즉 아시아를 벗어나 구라파(유럽)에 들었던 것이다.

 우리의 동도서기론은 동양의 정신문화, 주로 유교적 가치관을 우위에 두고 산업·기술·과학·무기 등 물질적인 면에서는 서양문명의 기적(器的)인 측면을 적극 수용하자는 논리였다. 중·일과 마찬가지로 서구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조선이 생존할 수 있는 근본 전략이라고 생각했고, 격변하는 역사 속에서 사회개혁이라는 내치적 상황을 서로 조화시키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인정된다.

그러나 서양문명에 대한 이해 없이 편리한 기술만을 수용하려 했고 실제에 있어서는 기술을 습득했다 하더라도 공장을 건설하고 생산할 재정적 여력이 없었다는 한계도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는 서양문명의 수용 과정에서 중국과 일본 중 어느 국가를 개혁의 모델로 삼느냐에 있었다. 그리고 개화와 척사(斥邪)를 정치이념으로 하는 집단들이 중국과 일본이라는 외세와 결탁되면서 내적인 분열은 더욱 심화되고 통합의 가능성은 멀어지게 되었다.

 거기에 개혁의 추진 방향이 왕권수호와 체제보전으로 선회하게 됨에 따라 정치적 주도권과 국정 운영의 방향을 둘러싼 대립은 더욱 첨예했다.

 결국 동도서기의 본질에서 벗어나 자주자립의 부강한 국가로의 진입이 아니라 오히려 외세 의존과 결탁이라는 국정 분열의 결과로 변질됐던 것이다. 근대 한국의 역사에 등장하는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등은 현재까지도 초강대국으로 존재하고 있다. 국제정치는 자국의 이익에 따라 변화무쌍한 것이기 때문에 누구를 견제하기 위해 다른 상대를 끌어들일 때 예기치 못한 간섭이 초래된다는 점을 역사 속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강대국은 우리의 의도와는 달리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면서 영향력 확대를 통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개입하게 되는 것이다.

 21세기 현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국내외적 분열현상은 19세기 말 서양문명의 수용과정에서 나타났던 분열상과 유사한 점이 많다. 분열의 요인과 양상에 대한 냉철한 분석, 국민 통합의 저해 요인과 소통 방안이 무엇인지 밝혀내야 한다.

어려운 과제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안보상의 위협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북한과의 관계 변화를 유도해야 하고, 강대국이 포진하고 있다는 여건을 감안한 새로운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외세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내부적 역량이 동시에 축적돼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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