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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식 시인
"황장(皇庄) 제64호라는 약 1m 높이의 표석이 내동 노상(내리예배당 목사 사택 후면)에 서 있다. 황장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신고(新古) 사전과 백과사전을 두루 들추어도 발견할 수는 없다. 표석이 서 있는 북편에 의장지(義葬地, 전 청국인 공동묘지, 내동 6번지 일대)가 있었더니만치 그와의 관련 여부를 알기 위하여 중국인 혹은 한학에 능통한 인사들에게 두루 문의하여도 허사였다. 황장 64호라고 새겼은즉, 이것 이외에도 많은 표석이 있음직하건마는 그도 발견할 수 없다."

 고 최성연(崔聖淵) 선생의 「개항과 양관 역정」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황장 표석(標石)에 대해 자못 궁금하셨던 듯하다. 특히 ‘황(皇)’ 자 때문에 머릿속에 혼란과 의아함이 교차하셨던 것 같다. 조금 더 읽어보자. "왕실의 소유지임 즉은 하다. 그러나 고종(高宗)이 황제위에 오르고 국호를 대한, 연호를 광무(光武)라고 일컬은 것은 1897년(고종 34년) 8월의 일인데, 그 이전의 소유지를 황장이라고 이름할 수 있었겠는가 자못 의아스럽다."

 ‘황(皇)’을 오로지 중국의 황제를 칭하는 뜻으로만 생각했다면 도무지 의아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앞서 황장을 의장지와 관련지었던 점이나 중국인, 혹은 한학 능통자들에게 문의했었다는 사실이 그것을 반증한다.

 더구나 황장 표석이 내동 의장지와 같은 관내에서 발견되었음에야 더욱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황장의 자의(字義) 그대로 ‘임금 황(皇)’ 자에 ‘농막 장(庄)’ 자, 곧 ‘임금의 농지’, 혹은 ‘왕실의 땅’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극히 간단했을 것이다.

 또 이 표석이 실제 1897년 이전에 세워졌다는 분명한 기록이 발견되지도 않은 터에 "그 이전의 소유지를 황장이라고 이름할 수 있었겠는가 자못 의아스럽다"고 할 것이 아니라 고종이 황제위에 오른 1897년 8월 이후에 세워졌다고 생각했다면 더욱 쉽게 이해가 되었을 일이기 때문이다.

황장에 관련한 사료(史料)가 더 있는지는 모르나, 이미 밝혀진 인천 황장에 대한 몇 건의 기록은 1902년에서 1907년 사이의 것들이다. 물론 표석 자체에 관한 기록들은 아니다. 일제가 군용철도감부(軍用鐵道監部) 숙사(宿舍) 부지로 사용하기 위해 황장 내에 임의로 표목(標木)을 세우고 조선인의 접근을 금지시킨 행태를 조정에 보고하고 그 처분을 바라는 내용들이다. 보고자는 인천 감리들이나 항장 내에서 농사를 짓는 마름이다. 보고 대상은 외부대신(外部大臣)과 내장원경(內藏院卿)이었다. 내장원경은 왕실의 보물, 세전(世傳), 장원(莊園) 등의 재산을 관리하는 책임자였으니 의당 그에게 보고해야 했을 것이다.

 기록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소중한 황실의 토지를 일제가 불법 무도하게 사용하는 데 대한 반발과 사력(私力)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울분, 수년래 소작료를 정부에 내며 황장의 농토를 경작하다가 철도감부 때문에 경작지를 잃게 되면서 그 억울함을 소원(訴願)하는 내용들이다. 개중에는 황장의 소작료 연체에 대한 소명 내용도 있다.

이에 대해 외부대신, 내장원경의 훈령이나 지시는 고작 철도감부와 순리대로 따져 표목을 뽑도록 하라거나, 그저 잘 알아보고 처리하라는 원론적 수준의 내용뿐이다. 어떤 결말이 났는지는 기록조차 없다.

 아무튼 "황장의 유래는 끝내 궁금하기만 하다"는 최 선생의 의문에 대해 답한다면, 황장 표석을 세워 왕실 토지임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외세의 확장, 특히 점증하는 일본세의 개항장 인천 토지 점유를 막으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싶다.

그랬더라도 일제는 멋대로 철도감부 부지라는 푯말을 황장에 세우고 말았지만. 또 한 가지 최 선생은 다른 표석을 발견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이것 외에 현재 또 하나의 표석 61호가 내동 6번지 민가 담벼락 밑에 누워 있다.

박물관이 나서 수거해 보관해야 마땅할 것이다. 차제에 ‘日本鐵道監部, 立標於典洞所有皇庄及黃谷皇庄’이라는 구절을 살펴 전동 기상대 일대와 도원동 황골고개 인근, 즉 고종의 이궁(離宮)이 들어설 뻔했던 곳에 대한 조사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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