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이 싫은 중은 떠나고 또 떠났다. 오사즉승리(惡寺則僧離)다. 중이 떠난 다음 날 주지스님은 무심히 싸리빗자루를 들고 일주문부터 법당까지 도량(道場) 안을 쓸었다. 제 허물은 보지 못하고 남의 시비를 먼저 보고 떠난 중과 그의 아상(我相)이 빈틈 없는 빗자루질에 쓸려 나갔다. 수행은 그렇게 소리 없이 진행됐다. 떠난 중의 잔상(殘像)은 절 어디에도 남겨지지 않았다. 절은 이내 평온을 되찾았다. 깊은 참선에 잠긴 선방 안의 스님들은 절이 싫은 중이 떠나는 게 맞다는 결론에 닿았다.

떠난 중은 새 절을 찾았다. 주지스님을 비롯해 그 절의 예법과 의식, 규율에 그는 금새 불만이 생겼다. 새로운 절은 그 전보다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더 견디기 어려웠다. 나를 앞세우고 나의 것은 양보하지 않고 나의 상 안에 갖힌 아집(我執)은 절을 부숴 버리라고까지 부추겼다. 하지만 중은 용기도 이를 도모할 인연도 그 무엇도 없었다.

속세에서 모진 떠돌이 생활이 떠오르자 중은 난공불락의 주지스님의 대체재로 행자 1명과 사미(예비승려) 1명을 모함했다. 모함을 입증하면 자신은 살아 남고 그들은 떠나며 부정한 규율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50년 전 행자 생활에서부터 온갖 모진 시련과 고초를 이겨 낸 대종사(大宗師) 스님은 그의 주둥아리를 바라봐 주지도 않았다. 절을 향한 그 중의 외마디는 떨어지는 가을 낙엽만큼의 주의도 끌지 못했다. 중은 절을 떠날 도리밖에 없었다.

길 위에 선 중은 가사장삼을 휘날리며 분노의 목탁을 두드리며 경을 외워 봤지만 최고 존엄자는 그의 물음에 답해주지 않았다. 답을 구하지 못한 중은 더 늙기 전에 재빨리 환속했다. 속세에서도 그는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일이 괜찮을 만하면 인간 관계가 꼬였고 인간 관계가 순통하면 일이 버거웠다. 억겁의 인연으로 맺어진, 동전의 양면 같은 속세의 업보를 그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윽고 비운의 생을 마감하고자 그는 절벽 위에 섰다. 마지막으로 최고 존엄을 향해 "도대체 왜?"라고 물었다. 최고 존엄은 답했다. "절 안에, 고리 안에, 삶 안에 있으라, 그 안에 서 있을 때 다시 묻거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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