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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노훈 경기본사 경제문화부장

#1. 7년 여 전으로 기억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취재차 출장을 갔을 때였다. 다른 회사 후배 여기자 한 명과 홍보대행사 여직원 한 명, 그리고 나 총 세 명은 마치 한 팀처럼 몰려 다녔다.

공식일정은 모두 마친 상태에서 약간의 여유가 생겼고 그곳의 ‘밤문화’가 궁금했다. 암스테르담은 공창(公娼)이 제도화돼 있다. 그래서인지 홍등가(紅燈街)는 음성적이라기보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하나의 ‘관광지’와 같았다. 주변 풍경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와 관련된 상점들이 많았다. 그 중 ‘∼ SHOW’라고 씌여진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이 발동한 우리는 과감히 입장권을 구입해 들어가기로 했다. 말은 안 했지만 다들 ‘그래 그야말로 그냥 쇼겠지. 뭐 얼마나 흥미롭게 구성했는지나 보자’는 표정이었다.

 그로부터 20∼30여 분 뒤, 밖을 나온 이후로도 약 10여 분간은 서로 말이 없었다. 아니, 서로의 얼굴조차 쳐다보기 힘들었다. 이내 누가 먼저 입을 열었는지는 기억 나지 않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대화를 이어 나간 뒤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2. 이후 몇 년이 지났을까. 한 국내 여가수의 노래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TV는 물론 라디오, 지나는 길거리까지 그녀의 음악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가사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개인적으로는 충격적이었다. 어렸을 적 흥얼거렸던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개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이란 내용을 개사한 가사였다.

그 곡에는 ‘빨개면 ○○, ○○은’으로 더이상 뒷 단어가 나오지 않고 멜로디만 흐르지만 내용은 누구나 유추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당시 속으로 ‘와 이런 가사가 이젠 심의도 안 걸리는구나’라고 생각했다.

 #3. 직접 확인한 바는 아니다. 중국에서 살던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다. 중국에선 한때 유행하던 선물이 있단다. 바로 성기 모양의 액세서리다. 남녀가 서로 장난처럼 주고 받기도 한단다. 사실인지 아닌지 가늠할 방법은 없지만 뒤 따라온 이 말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그러면 바로 신고 당할 걸."

 #1부터 #3까지의 예들은 서로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차이’다. 수식어를 덧대고 덧대자면 ‘문화의 차이’이며 ‘성(性)문화의 차이’이다. 아무리 공창이 제도화된 홍등가가 있다고 하더라도 ‘SHOW’가 진짜일거라는 상상을 하지 못한 건 대한민국에서 그렇게 자랐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국에서 20년 이상 살아온 세대라면 어렸을 때를 반추하더라도 그런 성문화를 가늠하긴 힘들었을 터다. 그렇다고 네덜란드의 그 ‘SHOW’를 비난할 권한이 우리에겐 없다. 국내 여가수의 노래 또한 그렇다. 그저 재미 있는 말 이어가기로 알았던 노랫말이 그런 식으로 개사가 되더라도 유행할 수 있었던 건 과거 세대와 요즘 세대들의 차이리라. 중국의 예 또한 그러하다. 서양도 아닌 같은 동양이지만 그만큼 성문화는 다르다. 차이는 여기까지다. 아무리 차이가 있더라도 ‘성범죄’는 단죄해야 한다.

 요즘 ‘미투(me too)’에 대한 이야기들로 왈가왈부(曰可曰否) 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본질을 흐리거나 왜곡하기도 하고, 역시 또한 일부 이를 악용하려는 사례들이 뒤범벅이면서 나타난다.

하지만 엄연히 성범죄는 ‘인간이라면 남을 해치거나 살인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상식처럼 현실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더욱이 미투는 ‘사회적 강자가 위계를 이용해 약자에게 저지르는 성범죄’라는 점에서 더욱 촘촘하게 살펴야 한다. 앞선 성문화의 차이와는 별개다. 혹자는 유독 우리나라 성문화가 보수적이라고 투덜댄다. 관점의 차이일 수 있지만 분명한 건 성문화는 받아 들여질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누구나 거부할 권리가 있다.

개방적인 성문화를 지향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미투에 대한 왈가왈부가 끊이지 않더라도 미투가 계속돼야 하는 건 어쩌면 왜곡 혹은 변질된 성문화가 제대로 자리잡아 가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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