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이 천하통일을 향해 첫 북벌에 나섰다가 뜻을 이루지 못했으나 위나라의 젊은 장수 강유(姜維)를 영입하는데 성공하자 크게 기뻐했다. 그때 강유를 유인하고자 체포했던 위군 사령관 하후무를 풀어준 일이 있었는데 이를 두고 ‘오리(하후무)를 놓아 주고 봉황(강유)을 얻었다’고 표현한 것이다.

 강유의 묘비석에 있는 원지(遠志: 원대한 의지)라는 글이 회자된다. 이야기는 강유가 촉한으로 투항하자 모친이 ‘당귀(當歸: 고국으로 돌아오라)’라고 쓴 서찰을 보냈으나 아들은 "양전백경(良田百頃: 좋은 밭 330만여㎡)이 있습니다. 1무(畝)의 땅(100무가 1경)만으로는 매력이 없지요. 소자는 원지를 갖고 있으므로 돌아가고자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답신을 보냈다. 이후 강유는 전폭적으로 제갈량의 총애를 받았고, 제갈량 사후에는 모든 전권을 물려받는 후계자가 된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방압이득봉은 겉만 번지레한 인물이 아니라 내공 있는 건실한 인물의 중요성을 말하거나 도모하는 바를 이루려면 반드시 봉황으로 여겨지는 인물을 얻어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찮은 인물을 내세우는 많은 정당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라고 하겠다.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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