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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하워드 가드너라는 사람이 그의 저서 「마음의 틀 (Frames of Mind: The Theory of Multiple Intelligence)」이란 책에서 소개했던 ‘다중지능이론’이란 것이 있다. 이 이론은 사람의 지능을 IQ 중심의 단일한 구조로 설명했던 이전의 이론들과 달리 언어, 수학, 공간, 음악, 신체, 인간친화, 자기 성찰, 자연 친화 등 여러 종류의 지능 영역으로 구성돼 있다고 봤다. 수학을 잘 못해도 노래와 춤을 잘한다거나 영어를 잘 못하더라도 공을 잘 차는 능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영어, 수학을 잘하면 다른 공부도 잘한다는 전통적인 생각을 뒤집은 것이다.

또한 사람의 지능은 개인마다 강점과 약점이 있기 때문에 강점은 더 키워 나가고 약점은 보완하도록 해 각 개인의 가능성을 극대화하도록 하는 인식의 변화를 제공해야 한다고도 했다. 교육이 왜 필요하고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를 시사해 준 아주 중요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을 둔 부모들이 자녀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 중의 하나는 아마도 ‘제발 공부 좀 해라. 배워서 남 주니?’가 아닐까 한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도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자주 하셨던 말이기도 하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모두 자기에게 득이 되는 일인데 왜 열심히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담긴 사랑의 꾸지람이었을 것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명문 학교에 입학할 수 있을 것이고, 좋은 직업을 갖게 돼 결국 잘 살게 될 것이라는 희망 섞인 말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그 말에는 결국 한 줄 세우기 무한 경쟁의 의미가 담겨 있어서 다양한 학습체험을 통해 소질을 키우고 자신의 꿈을 실현해 나가야 할 지금의 청소년들에게는 듣기 거북한 충고일 수밖에 없게 됐다. 게다가 지능이란 것이 불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변할 수 있는 것이고 개인마다 강점은 더 키우고 약점은 보완해 개인의 가능성을 극대화하도록 해야 한다는 하워드 가드너의 교육 이론과도 배치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 아이가 어떻게 바뀌고 어디까지 성장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이제는 ‘공부해서 남주니?’라는 말 대신 ‘공부해서 남 주자’라는 말로 격려해 주는 것이 더 합리적이고 타당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울지마 톤즈’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고 이태석 신부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는 공부를 많이 한 의사로서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었음에도 신부가 돼 아프리카 수단 남부의 톤즈라는 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48세의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분이다. 그 분의 일생은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그는 말라리아와 콜레라로 죽어가는 아프리카 수단의 톤즈 마을 주민들과 나병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손수 흙과 풀로 벽을 만들고 지붕을 엮어 병원을 세운다. 오염된 톤즈 강물을 마시는 주민들에게 콜레라가 매번 창궐하자 여러 곳에 우물을 파서 식수난을 해결하기도 하고, 하루 한 끼를 겨우 먹는 어려운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농경지를 일구어 식량을 해결하기도 했다.

 부지를 마련해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중학교와 고등학교까지 세워 학생 교육을 하고 원주민 계몽에도 나섰다. 음악을 좋아한 그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학생들을 위해 밴드를 만들어 찌든 생활에 지친 학생들의 영혼까지 치료하고자 노력했다.

 이 분은 공부해서 남 주는 일이야말로 세상을 밝게 비추는 일이고,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준 위대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몇 년 전 사회 일각에서 ‘배워서 남 주자’는 운동이 일어나다가 만 일이 있다. 당시에도 놀랍고 반가운 일이었지만 크게 번지지는 못했다. ‘공부해서 남 주는 일’, ‘배워서 남을 위해 쓰는 일’을 우리 아이들이 익히고 실천하게 하자. 온갖 사회적 갈등을 다음 세대까지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배워서 남 주자’는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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