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50대 실직자 A씨는 한 통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고액 알바, 일당 지급, 불법 아닌 단순 배달일.’ 돈이 절박했던 A씨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날 이후 A씨는 대포통장을 배달하고 일당을 받는 ‘대포통장 배달책’이 됐다. 그의 죄의식은 돈 앞에서 눈을 가린 채 침묵했다. ‘고소득 알바’라는 말에 넘어가 보이스피싱에 가담한 40여 명이 경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인천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28일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및 사기 혐의로 대포통장 모집책 B(29)씨 등 12명을 구속하고, 배달책 C(36)씨 등 3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A씨 등은 지난해 11월부터 이달까지 중국 선양(瀋陽)에 있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지시를 받고 피해자 30여 명에게서 받아 가로챈 8억4천여만 원을 중국에 송금키 위해 대포통장을 모집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중국에 있는 조직은 한국 총책과 연락해 인터넷 구직 사이트에 글을 올려 대포통장 모집책, 배달책, 현금 인출책 등을 모집했다. 모집책은 배달책 1명을 데리고 올 때마다 50만 원을 받았으며, 배달책은 대포통장 1개를 옮길 때마다 5만∼10만 원가량을 받았다.

적발된 43명 중 대포통장 대여자 28명은 ‘용돈벌이’나 ‘부업’이라는 인터넷 광고 등을 보고 명의를 빌려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조사에서 이들은 대포통장 1개당 100만∼300만 원을 준다는 말을 믿고 명의를 빌려줬으나 실제로 약속한 돈은 받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우제성 기자 wjs@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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