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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상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흑두루미가 돌아가는 계절인가 보다. 약속시간을 한 시간 이상 남기고 일부러 걷는데 하늘에서 한 무리의 커다란 새들이 ‘두룩두룩’ 선회한다. 순천만 일원에서 겨울을 난 흑두루미들이 여름을 지낼 시베리아 아무르 지역으로 떠나는 도중에 연수구를 지나치는 모양인데, 왠지 어수선하다. 하늘 저 높은 곳에서 영어 알파벳 브이를 넓게 펼치며 북녘하늘로 날아야하거늘 대오가 흐트러진 모습으로 희뿌연 하늘을 맴돈다. 먼 길 떠나기 전에 허기진 걸까? 순천만 일원에서 두둑하게 먹었을 텐데, 혹 숨이 답답해 그러는 건 아닐까?

 수명이 긴 두루미 종류들은 자신이 살아온 궤적을 기억할 거로 조류 전문가는 추측한다. 겨울철마다 순천만으로 내려오는 흑두루미들은 돌아가는 길도 비슷할 텐데, 서해안의 드넓었던 갯벌을 기억하는 걸까? 철근콘크리트 구조물과 아파트 숲, 그리고 아스팔트로 뒤바뀐 송도신도시와 연수구를 잊지 않았으니 고마울 따름인데, 고통스럽겠다. 순천만 습지에서 아무르로 이동하는 길이 언제부턴가 미세먼지로 혼탁해지더니 올해는 그 정도가 유난스럽지 않은가.

 연수구 하늘을 맴돌던 흑두루미는 3월 관측 사상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의 농도가 최악인 이 시간 한반도의 하늘을 잘 빠져나갔는지 궁금한데 지상세계는 새봄을 맞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4개월 기다렸던 프로야구 시즌이 돌아오지 않았나. 꽉 찬 관중석은 홈팀의 선전이 이어지자 응원으로 파도치는데 텔레비전 카메라는 관중석의 밝은 표정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 희뿌연 텔레비전 화면을 보여주던 아나운서는 중계 내내 양해해 달라는데 선수가 걱정이다. 운동장에서 땀 흘리는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바람이 서너 시간 불면 대기의 정체된 먼지는 어느 정도 물러서는데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지나 일본 일원까지 뒤덮이는 요즘 미세먼지는 아니다. 휴대전화에 깔아놓은 앱은 인천의 초미세먼지를 연실 경고한다.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가 더 높은 날이더라도 초미세먼지는 대체로 인천의 농도가 서울보다 심각하다. 시간당 90마이크로그램 이상으로 2시간 이상 지속될 때 발령한다는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인천에서 극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과 가깝기 때문일까? 인천 앞바다에 화력발전소가 밀집된 현상과 무관할까?

 기상캐스터는 폐가 약한 어린이나 노약자는 되도록 집에 머물고, 밖에 나갈 때 마스크를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황사용 마스크’를 강조하는데 황사 입자를 거르는 마스크는 초미세먼지는 제대로 잡지 못한다. 초미세먼지를 잡는 마스크를 착용하면 숨 쉬기 답답하다. 그런 마스크는 폐가 약한 사람의 건강에 해를 줄 수 있다는 전문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되었을 때 덮어놓고 마스크를 권고하는 국가는 싱가포르와 우리뿐이라고 그 전문가는 덧붙이는데, 정작 거리에서 마스크 착용한 시민은 그리 많지 않다. 미세먼지 앱은 우리나라 주변의 상황을 시시각각 전하는데 우리보다 중국이 심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올 겨울 베이징의 대기가 우리보다 깨끗한 날이 많았다고 한다. 석탄 난방을 전격 금지한 이후의 상황이라는데 그렇더라도 석탄을 사용하는 화력발전소가 존재하는 한 대기상태를 당장 호전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석탄 난방을 하지 않는 우리나라는 어떤 대책을 고민해야 할까? 비슷했던 유럽의 상황을 주시했을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그 방법을 모를 리 없다. 다만 눈치를 볼 따름이겠지. 유권자보다 자본의 눈치겠지. 지방자치가 강화될 마당에서, 초미세먼지가 더욱 심각한 인천의 대책은 무엇이어야 할까?

 아이의 손을 잡고 야구장을 찾은 시민들의 밝은 표정에서 봄이 다가오는 걸 실감하는데, 전에 없던 미세먼지로 희뿌연 봄을 맞아야 하는 요즘 시민들은 하늘을 볼 때마다 자식에게 미안할 듯하다. 때마침 아이 손잡고 국제하프마라톤대회에 참여한 인천시민들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올 겨울을 순천에서 보낸 흑두루미는 내년 이맘때도 연수구 하늘을 맴돌지 모르는데 작년보다 더러워진 하늘 아래 머물고 있는 시민들은 내년을 걱정한다. 아이들의 건강과 행복이 달려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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