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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역사소설가
중국 병법을 집대성한 ‘36계(計)’에서 여섯 번째 계책이 성동격서(聲東擊西)다. 풀이하면 소리는 동쪽에서 지르고 정작 공격은 서쪽에서 한다는 것이지만 핵심은 협상 테이블에서 2차적인 문제로 밀고 당기다가 양보하고 1차적인 목적을 성사시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회남자」 <병락훈>에 "따라서 용병의 바른 방법은 겉으로 부드러운 모습을 드러냈다가 상대가 오면 굳센 힘으로 맞이하고, 약한 모습을 보였다가 강력한 공세를 취하는가 하면 움츠린 듯하다가 돌연 나아가는 것이다. 서쪽을 취할 생각이 있으면 먼저 동쪽을 공격할 듯이 해야 한다"는 설명 그대로다.

지금 우리는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인 빅 이벤트에 술렁거리고 있다. 더하여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유는 여럿이겠으나 무엇보다도 예측불가능한 그의 태도나 현재 국내외로 처한 상황의 심각성 때문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국내적으로 러시아 스캔들을 파헤치는 로버트 뮬러 특검과의 다툼이 있고, 성관계를 가졌다는 여성들의 폭로가 잇달아 코너에 몰리고 있다. 그리고 대외적으로 중국과의 무역 전쟁, 핵을 둘러싼 이란 및 북한과의 대결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자신만만해 보인다. 마치 어떤 일이 벌어져도 문제없다는 듯이 큰소리치고 있다. 지지층을 격동시키고 자신을 공격하는 국내외에 대해 협박(?)을 서슴지 않는다. ‘미치광이 전술’이라는 비아냥거림도 있고, ‘벼랑끝 승부수’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 과정에서 흘러나온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가 관심을 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약 600억 달러(64조원)어치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 방침에 서명하고 무역수지 불균형 해소라는 일방적 주장을 밀어붙이고 있는데 겉으로 정면충돌하는 모양새이지만 수면 아래서는 한국과 일본에서 생산되는 반도체에 대한 흑심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중국이 수입하는 한국산이나 일본산 반도체 대신에 미국산을 구매하라는 일종의 간접 압력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중국은 재빨리 미국산 반도체 수입을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는 것이 골자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는 중국의 미국과의 무역 전쟁을 피하려고 한국과 대만산 반도체 수입을 줄이고 대신 미국산 반도체 구매를 늘리는 방안을 미국 쪽에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원하는 속셈이 반도체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 전쟁을 피하기 위해 미국의 재계가 요구하는 중국의 금융자유화 확대, 국유기업 보조금 축소, 자동차 관세 인하, 규제 투명성 제고, 미국 기업의 진출 때 중국 기업과의 합작 의무 폐지 등등을 받아들여 중미 무역 전쟁을 종료시킬 수 있겠으나 트럼프 대통령의 진정한 목표가 여기서 끝날 수 있을까 의문이다. 그는 다른 이들이 모두 틀렸고 자신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려는데 있어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 사람이란 걸 감안하면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조지 윌은 ‘트럼프가 지적 능력, 교양, 원칙, 명료함, 경험 다섯 가지를 결여했기에 가장 위험한 인물’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예측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반도체와 자동차, 철강은 우리의 대외 무역에 있어서 핵심 3종이다. 이에 대해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입장을 헤아려주는 인물이 아니다. 어쩌면 그는 우리의 핵심을 건드려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데 주저할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한국의 입장을 염두에 두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자신의 지지층을 격동시키고 자신을 공격하는 워싱턴 기성 주류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드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발 관세 폭탄’과 한미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의 타깃이 되었던 철강과 자동차 문제 역시 아직도 끝난 게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화의 패배자와 자유무역의 희생자들에게 일자리를 되돌려주겠다는 포퓰리즘으로 백악관 입성에 성공했고, 백인 빈곤층으로 대표되는 지지기반을 바라보는 인물이다. 그에게 동맹국인 한국이 보일까? 주적은 중국이지만 우리의 ‘부수적 피해’는 갈수로 확산될 것 같다는 걸 의식해야 한다.

◈ 이 원고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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