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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락기 한국시조문학진흥회 명예이사장
얼굴은 그 사람을 대표한다.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풍모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한국문학의 얼굴은 어느 분야일까. 한국문학의 대표 장르를 그 얼굴이라 할 수 있다. 문학의 장르에는 시조, 시, 소설, 희곡, 평론, 동화 등등 분류 방법에 따라 여러 갈래가 있다. 시조에 대해서 살펴본다.

첫째, 시조는 우리 겨레만의 고유한 시가다. 이는 중국의 한시, 이탈리아의 소네트, 일본의 하이쿠 따위가 그 나라에만 있는 거와 같다. 세계 여러 나라에 다 있는 여타 장르와는 다르다. 시조는 시라 할 수 있으나, 시가 곧 시조는 아니다. 흔히 시라고 하면 자유시를 일컫는다. 다른 나라와 같이 국민문학으로 장려하지는 못 할망정 시조를 단순히 시의 이름 속에 묻혀둘 수 없다.

 둘째, 시조는 우리 한류문화의 오랜 역사적 전통을 이어오는 문학이다. 고려 말 역동 우탁 선생의 백발가로부터 치면 800여 년, 신라 향가를 연원으로 하면 1천여 년이나 된다. 심지어 일제강점기 우리말 사용의 폭압 속에서도 여태까지 살아남아 있다.

 시조(時調)는 이름 그대로 그 시대 상황을 그려 읊는 가락이다. 고시조든 현대시조든 읊어 보면 당대 특유의 사회적 성향이 드러난다. 시조는 당대 문학이며 곧 현재의 문학이다. 시대성의 표출이야말로 시조를 늘 살아있게 하는 불쏘시개다. 정통성을 가진 우리 시가의 종조는 바로 시조라 하겠다.

셋째, 시조는 율격미 넘치는 우리 민족의 유일한 정형시다. 3·4조 내지 4·4조를 기본으로 이뤄진 자수율은 읊으면 읊을수록 절로 어깨가 덩실거린다. 국문학자 고 이능우 선생은 "우리말의 4음절은 사실 어떠한 안정감을 주며 실제로 운용되는 단위"라고 했다.

 원래 시조는 노래와 글월이 함께 어우러진 거였다. 오늘날 노래는 ‘시조창’으로, 글월은 읽고 느끼는 ‘시조’로 나누어졌다. 그렇다고 하여 아주 갈라선 것이 아니다. 글월로 된 시조 속에는 태생적으로 음악성이 밑바탕에 흐르고 있다. 시조 ‘수안보 속말’처럼 현대가곡으로 지어 부르기도 좋다. 시조는 3장 6구 12소절 45자 내외로 돼 있는 정형시다. ‘내외’라는 것은 교착어인 한국어의 속성상 용어 운용에 따라 1,2자 가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형시인 우리 시조만이 부리는 멋이요 운치다. 여느 나라 정형시와는 품격부터 다르다.

넷째, 시조는 한민족 누구나 창작해온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예로부터 사대부, 평민, 기녀 등 누구랄 것 없이 삶의 애환을 읊고 노래해온 보편적인 국민문학이다.

 그러나, 시조는 지금 슬픔을 넘어 눈물마저 마르고 있다. 2016년 이른바 ‘문학진흥법’이 제정됐는데, 문학의 정의에 시, 소설, 수필, 희곡, 평론이 들어가고 시조가 빠졌다. 한국시조협회 주관으로 시조를 넣기 위해 6개 시조단체가 모여 각고의 노력 끝에 그해 11월 국회에서 이종배 국회의원과 시조문학 진흥을 위한 공청회를 열었다. 법 개정에 당연히 시조가 들어갈 줄 알았던 시조단은 망연자실했다. 2017년 3월 국회 문화체육관광 법안소위원회에서 상정이 보류됐기 때문이다.

 제 나라의 종조 시가를 제 문학진흥법에 이름도 올리지 못하다니, 누백 년간 살아온 시조에게 할 말이 없다. 아마도 자유시의 아류쯤으로 생각했을 거다. 조상 없이 어찌 자신이 있을 수 있는가. 자유시가 일제 초기 이 나라에 들어와 지금 주역을 차지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시조와 같은 우리말의 텃밭이 없었다면 어이 자랐을까. 정부가 설립한 동북아역사재단이 일반인도 알 수 있는 고대사를 일제 식민사학과 중화사대사관에 젖어 다루는 거와 무어 다를 게 있는가. 대구의 시조시인 리강룡 선생이 2015년 「한국시조문학」 권두언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한글과 시조는 이 나라의 보물 중의 보물이다.

 요즈음 세계 각국에 한국어 공부 붐이 일고 있다. 시조로 한국어를 공부하며, 외국에 초빙된 교수가 시조로 강의할 때 한국문학에 더 관심을 가지더라고 한다. 이즈음 우리 시조는 교과서에서도 자유시 속에 묻혀 근근이 살아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는 때다. 시조는 가장 한국적인 시가이다. 정통 한류 정신문화의 으뜸으로 세계에 설 수 있다. 한국문학의 얼굴이며 대표 장르다. 누가 제 나라 문학진흥법에 자기 이름을 넣지 못하게 하는가. 시조 한 수로 달래본다.

 # 얼굴
 오만상을 짊어진 채
 무던히도 살아간다
 
 속마음도 너 아니면
 피울 수 없는 거라
 
 어느 뉘
 모습 하나도
 꽃다웁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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