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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사연 수필가

도둑고양이는 길고양이로, 집 지키던 개를 비롯해 애완동물은 반려동물로 격이 상승된 세상이다. 오죽하면 강아지 서열이 50대 남편보다 위에 올라 가족이 이사할 때 잡쓰레기와 함께 버려지지 않으려면 부인이 가장 사랑하는 애완동물을 가슴에 소중히 안고 있어야만 이삿짐 트럭에 동승할 수 있다는 씁쓸한 개그가 공감을 사고 있을까. 동물이 출연하는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노라면 절로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애완동물을 언제 양자로 입적시켰는지 미혼이든 중년이든 그들의 호칭은 자칭 엄마 아빠가 돼 있다. 고급 동물 전용 카페도 심심치 않게 들어서고 있다.

반려동물이란 애완동물의 차원을 넘어 인생의 고락을 함께 나누는 가족 관계이다. 독신을 주장하는 젊은이들이 경제적 여유와 쾌적한 주거환경에서 외로움을 나누기 위해 입양한 가족이다. 때로는 황혼의 인생을 홀로 보내기 두렵고 자식들에게 잊힌 서운함을 보상받으려는 노인들이 마음의 벗으로 삼은 대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목줄도 제대로 하지 않은 애완견을 데리고 아파트와 공원을 활보해 주민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고 배설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등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

 지인 중엔 추운 겨울에도 항상 창문을 열어놓고 십여 마리의 길고양이를 집안으로 불러들여 먹이를 주는 70대 여인이 있다. 그녀는 방에서 강아지도 두 마리를 키우고 있어 집 안팎은 소음과 악취로 난리가 아니다.

그녀 곁을 맴도는 길고양이들은 동네를 헤집고 다니며 쓰레기봉투를 물어뜯어 골목을 어지럽히고 세차해 놓은 승용차 위에 발자국 무늬를 새겼다.

주민들은 그녀의 대문 앞으로 몰려와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고 사정도 하고 결국엔 욕설과 거친 몸싸움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따분함을 달래기 위해 내 돈 들여 먹이를 주는데 웬 간섭이냐고 오히려 반발했다.

 내가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에 비둘기 부인이 있었다. 주민들이 아파트 값 떨어진다고 격렬하게 항의하며 다른 아파트로 이사 가라는 말이 나오자 먹이 주는 보시를 중단했다. 그녀의 출가한 자식들은 발길을 끊고 있다.

그녀는 물론 집 대문 앞에서부터 풍기는 악취가 싫었고 자식과 손자보다 반려동물에 더 기운 차별이 서운했기 때문이다. 늘 생활이 궁핍해 손자들 용돈은커녕 자신의 끼니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면서 주머니를 털어 길고양가 좋아하는 보양식을 장만하는 데 급급하니 예쁘게 봐줄 가족이 어디 있겠는가. 먼 곳 시장에서 얻은 비둘기 먹이용 강냉이 보따리를 챙겨오느라 거액의 택시 요금까지 아끼지 않았다는 자화자찬에 가족들은 분통의 한숨만 내쉰 적도 있었다.

 그녀는 나이 70 문턱을 넘은데다가 허리 수술 후유증 등으로 온 몸이 안 아픈 데가 없다며 염불하듯 신음을 달고 산다. 그런데도 길고양이 먹이를 구하기 위해 인근 시장은 물론 멀리 떨어진 어시장까지 찾아가 얻어온 생선 대가리를 주방에서 끓이다가 건망증으로 냄비를 몇 번이나 태웠다고 한다. 불의의 화재사고로 자신과 이웃이 더 큰 화를 당하지 않을까 노파심이 앞선다.차라리 그럴 시간에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거나 파지를 주워 손자 손녀들에게 용돈이라도 주었다면 자랑스러운 할머니로 존경을 흠뻑 받았을 것이다.

 요즘엔 대상포진으로 병원 신세를 진다기에 동물을 멀리하라고 조언하자 영양실조로 인한 면역력 부족 때문이지 결코 동물의 털과는 무관하다고 억지를 부린다. 오죽하면 그녀의 건강이 악화돼 거동할 수 없을 때 당신의 병수발을 들어줄 이가 자식이지 길고양이와 비둘기들이겠냐며 지청구를 주지만 쇠귀에 경 읽기다. 반려동물 애호가의 심정을 이해한다.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 야생동물들에게 끼니를 챙겨주는 과잉보호 역시 그들의 생존 방식에 혼란을 주는 동물학대 행위라는 사실을 그녀가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간은 사람답게, 야생동물은 들짐승답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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