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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전오 인천발전연구원
대학원생이었던 1996년 어느 날, 서울 난지도에 갔었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쓰레기산의 경사진 비탈면에는 아까시나무와 버드나무가 자라고 있었고 침출수가 고인 호수 같지 않은 호수에는 오리들이 우릴 피해 황급히 자리를 떴다. 쓰레기가 샌드위치처럼 켜켜이 쌓이는 수많은 시간 동안 사람들이 찾지 않은 그곳에서는 자연이 스스로 나무를 내고 새들을 불러 모았다. 그 후 난지도는 안정화됐고 지금은 서울시민들이 찾는 생태공원이 돼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서울의 중요한 명소가 됐다.

2015년에는 인천시 자연환경조사를 위해 수도권매립지를 찾았다. 연탄재를 매립했다는 녹색바이오단지는 해마다 국화축제를 위한 명소가 돼 있었고 매립이 이미 끝난 제1매립지 정상부는 대중골프장이, 그 사면은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가 꾸준히 노력해 만든 숲이 있었다.

 제2매립장은 위생매립 방식으로 매립 작업이 한창이었으며 제3매립장은 매립 유보지라 출입이 통제돼 경계부를 따라서만 둘러볼 수 있었다. 제4매립장은 검단천 하류에 위치하기 때문에 홍수 예방을 위한 유수지인 안암호와 배후의 넓은 초지를 갖고 있는데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의 협조를 받아야 출입이 가능했다.

야생조류 조사 결과를 정리해 보면 너무도 많고 다양한 새들이 1∼4매립지와 녹색바이오단지를 찾고 있었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 1급인 흰꼬리수리, 매, 저어새, 두루미, 황새, 노랑부리백로 6종이 있었고 2급은 검은머리물떼새, 노랑부리저어새 등 9종, 천연기념물은 원앙 등 4종이 기록됐다.

이들 보호종 이외에도 수많은 오리류, 기러기류, 도요새류, 산새류가 관찰됐다. 세계적으로 중요한 보호종이면서 인천권역에 번식지 대부분을 갖고 있는 저어새는 수도권매립지 바로 인근 매도에 번식지를 두고 이곳 안암호에서 먹이를 구하거나 휴식을 위해 찾는 것으로 보인다. 겨울철이면 강화남단을 찾아 월동하는 30여 마리 소규모 무리를 이루는 두루미 역시 이곳을 찾는다. 갯벌에서 먹이를 구하기에 철원이나 연천의 두루미와 생태나 이동 루트가 다르다고 알려지고 있는 인천의 상징새 두루미가 안암호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이동기에 잠시 들른 것으로 보이는 황새나 여타의 보호종들뿐 아니라 내가 본 안암호는 오리와 기러기의 낙원이었다. 어디서 그 많은 새들이 왔는지, 종류도 다양했지만 숫자가 엄청났다. 인천을 상징하는 새는 두루미다. 문학동, 선학동, 학익동 등 학이 들어가는 지명이 많다. 지금은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천연기념물 257호 ‘인천 연희동 및 경서동 두루미 도래지(1977∼1984)’에는 청라국제도시가 들어서 있다.

수도권매립지는 인천시 육지부에서 한남정맥으로 대표되는 산을 빼고는 대규모의 야생동물 서식지로서 마지막 공간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제4매립지에 신재생에너지인 태양광발전을 위한 시설이 계획되고 있다.

 심지어 안암호 수면 위까지 수상 태양광발전을 구상하고 있다고 한다. 환경을 위해 태양광발전을 확대해야 한다고 했는데 현장에서는 이로 인해 자연생태가 훼손되는 환경 내부의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자연환경 연구자로서 신재생에너지 개발 역시 개발의 하나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수도권매립지 가까이에 국립생물자원관이 있다. 그곳에는 큰 전시장이 있어 실내에서 자연생태를 배울 수 있다. 반면, 수도권매립지 1∼4매립지와 녹색바이오단지에는 살아 있는 자연이 있다. TV에 나오는 아프리카의 사자나 코끼리는 없지만 우리 땅에 기대어 살아온 수많은 생명이 있다.

 그곳에서 나는 커다란 고라니 사체도 보았고 힘차게 꿈틀대는 무자치(뱀)도 보았다. 야생조류뿐만 아니라 말 그대로 야생동물의 천국이 될 수 있는 곳이 수도권매립지이다.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연은 그렇게 우리 가까이에 있고 지금은 또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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