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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환 정경부장
선거는 좌절의 경기다. 거기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선수들은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하나같이 승리를 꿈꾼다. 처음부터 패배는 나의 것이 아니라 상대의 몫이다. 그토록 단단한 맹목적 확신도 드물다. 그 순진한 망상은 얼마 못가서 무참히 깨진다. 승리의 월계관은 선택받은 극소수의 차지로 끝난다. 나머지 대다수는 패자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만에 하나.’ 선거의 속성상 어쩔 수 없다. 승자의 자리가 하나다. 하지만 그것을 향한 도전자들의 수와 욕망이 넘쳐난다. 천신만고 끝에 이긴 자는 늘 각광을 받는다. 우리는 승자에 환호하고 그들의 전설을 만든다. 승리자의 미덕을 배우려고 한다. 패자는 항상 뒷전 신세다. 이름조차 기억해 주는 이도 없다. 쓸쓸히 그리고 조용히 사라질 뿐이다.

선거판은 경쟁의 효율성이 지배한다. 비열한 술수를 써서 당선을 낚아챘더라도 그 승자에 대한 세간의 비난은 아주 잠깐이다. ‘마지막에 이긴 놈이 최고여’라는 결과만능주의가 곧잘 덕목으로 작동한다. 과정은 뭉개지고 오직 결말만이 중요하다. ‘좋은 승자와 나쁜 패자’의 정형적인 등식만이 휘젓는다.

선거는 비정하고 야비한 게임이다. 자신의 허물 앞에선 너그럽기가 이를 데 없고, 상대의 과오에는 냉혹하기가 그지없다. 불리하다 싶으면 이리저리 피해 다니며 나풀거리는 나비요, 득이 되는 듯하면 독기 서린 침을 바짝 세우고 달려드는 벌떼로 돌변한다.

인천의 선거판, 특히 경선판이 그 모양이다. 전과기록의 예비후보자들은 그 전력을 숨기기에 급급하다. 말도 안 되는 논리와 궁색한 변명으로 자기 합리화하기 바쁘다. 온갖 줄을 대며 윽박지르다가도 그게 아니다 싶으면 한순간 납작 엎드려 읍소한다. 측근이나 비선 세력들의 옆구리를 찌른 시위도 한두 번이지, 때만 되면 공천 압박용 관제집회를 밥 먹듯이 한다.

이것저것 사정 볼 것 없는 후보는 그렇다고 치자. 비리 혐의로 기소를 당해 당권을 정지해야 할 후보를 두둔하고, 수사선상에 오른 공천신청자를 감싸고도는 당협위원장과 시당은 대체 뭔가. 시민사회단체의 낙선 대상자 명단에 오른 부적격 후보를 신주단지 모시 듯하며 굽실거리는 까닭이 또 무엇인가. 2년 앞으로 다가온 국회의원 선거에서 그 부적격자들이 없으면 표를 얻을 도리가 없거나 선거에서 떨어진다는 말인가. 그것도 아니면 남들이 알아서는 안 되는 은밀한 거래 때문인가. 당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은 고전적 위안을 주절거릴 지도 모른다. 바로 기회의 균등이다. ‘진정 능력이 있고 출세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문은 언제나 모두에게 열려 있다’고 둘러댈 것이다. 유권자의 눈에는 이미 운동장은 기울어졌고, 근대사회에나 통할 법한 구차한 에두르기다. 이 어설픈 변명은 시대착오적이기까지 하다.

20세기 문턱만 하더라도 대다수 경쟁자들은 굴종을 바꿀 수 없는 질서나 하늘이 정한 이치로 묵묵히 받아들였다. 굴종을 패배로 인식하지 않았고 세상사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원리로 여겼다.

그러나 세상이 달라졌다. 모든 사람이 돈과 권력, 명예, 명성을 향해 끊임없이 경쟁을 벌이는 시대로 변했다. 오늘날 경쟁은 노동시장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고와 욕망까지 지배한다.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는 만병통치약으로 받들기도 한다. 과다 경쟁은 대다수를 낙오자와 패배자로 만든다. 경쟁에서 뒤진 이들은 운명을 탓하거나 자신을 패배자로 여기며 괴로워한다. 또 미워하던 상대가 선망의 대상이 되고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면 고통스러워한다. 경쟁에서 자신이 승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괴로워하고 가슴을 쥐어뜯는다.

이런 마당에 패배가 뻔한 기회의 균등을 아무런 저항 없이 감수하라고? 세상과 사회에 대한 불만이 있을 뿐이다. 나의 실패는 삐뚤어진 세상 구조와 썩은 사회에 책임이 있다며 갈등을 동반한다. 결국 열등감과 자책감을 내재한 무능한 사회로 내몬다.

깨끗이 승복할 줄 아는 아름다운 패배가 이번 선거의 미덕이어야 한다. 오로지 정상을 향해 달려가는 이들, 승리를 채가려고 온갖 술수를 마다하지 않는 자들, 인간적 매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이들로 채워진 세상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패배를 묵묵히 받아들이고 제자리를 지키며 사는 위대한 패배가 있기에 세상은 아직 참을 만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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