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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식 전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사이클 인천의 최초 기록으로는 고일(高逸) 선생의 「인천석금」에 "만석동 파출소 근방에서 엄복동(嚴福童), 조수만(趙壽萬)의 초기 자전거 경주대회도 나중은 이곳 웃터골로 자리를 잡고 인기를 끌었으며" 하는 구절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만석동 운운은 아마도 1913년 4월 경성일보사(京城日報社)와 매일신보사(每日申報社)가 공동 주최한 전조선자전차경기대회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대회는 12일에 제1회 대회 인천, 2회 대회는 13일에 용산, 그리고 27일에 제3회 대회가 평양에서 연속해서 벌어졌는데, 인천 대회장이 만석동 매축지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매일신보는 이 대회에 시민들의 관심을 끌어내려는 듯, 대회를 관람하기 위해 시내 각급 학교 학생들은 물론 일반 관객이 모여들어 "전경기(全景氣)의 성(盛)함이 가경(可驚)"일 것이고, 특히 인천의 인(鱗), 팔판(八坂), 천강(淺岡) 세 요리점에서 우승기를 기증했으며, 더불어 "인천 화류계(花柳界)의 총출(總出)로 장내를 알선(斡旋)"할 것이라고 크게 선전하고 있다. 인천은 ‘라지 자전거’ 조선총지점(朝鮮總支店) 소재지여서 "윤계(輪界)의 맹자(猛者)가 불소(不少)"하리라고 매일신보는 예측했으나, 이 대회에 조선인 인천 선수가 출전했는지는 불명하다.

엄복동은 이 대회 이후 승승장구하면서 조선 제일의 자전거 선수가 되어 1910∼20년대 전국의 자전거경기대회를 휩쓸면서 비행사 안창남(安昌男)과 더불어 ‘하늘에 안창남, 땅에 엄복동’이라는 당시 온 국민이 열광하던 유행어의 주인공이 된다. 이후 인천에서도 몇 번의 전국대회가 개최되지만 이렇다 할 인천 선수의 출현은 없었다. 1950년대에 들어서야 ‘인천꼬마’로 불리던 작은 체구의 김호순(金好順) 선수가 등장하면서 비로소 인천 출신으로서 한국 사이클의 대들보 노릇을 한다.

김호순의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1947년 10월 21일 시대일보의 ‘조선올림픽’ 폐막 기사에서다. 최종일 서울-인천 간 100km 도로경주에서 2시간 31분 14초 5의 기록으로 서울의 김석근(金錫根)에 1분 26초 4 뒤진 기록으로 2위를 했다는 기록이다.

조선올림픽은 아마도 오늘의 전국체전 같은 대회인 듯하다. 이때가 김호순 나이 20세 약관이었다. 그 뒤로 1950년대에 들면서 한국 사이클은 거의 작은 거인 김호순의 독무대가 된다. 1955년 서울시 자전거경기연맹 주최로 열린 도시대항 자전거경기대회에서 김호순은 500m와 5천m 경기에서 우승한다.

김호순은 트랙 경기보다 도로경기에서 더 두각을 나타내 1956년 9월 8일에 거행된 제16회 멜버른올림픽 선발전 96.5km 도로경기에서 우승한다. 이때 김호순의 올림픽 출전 경비 조달을 위해 만화책을 발간하는데 그 내용이 황당하면서도 재미있다. 인천 꼬마 김호순이 연습을 하기 위해 부평 원통이고개를 달리는데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위험을 느낀 김호순이 내달려 비호(飛虎)조차 훨씬 뒤로 따돌렸다는 내용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의 기억이다. 어쨌거나 멜버른올림픽 도로경기에서 김호순은 37위에 그치고 만다.

그러나 전쟁 후 먹을 것, 입을 것 제대로 없는 나라 사정에 그만한 성적인들 어찌 대단치 않으랴. 그후 1958년 동경아시안게임 마지막 날 도로경기에서 김호순은 동메달을 딴다. 1위는 같은 인천 출신 이홍복(李洪馥), 그리고 2위는 노도천(魯道天)이었다.

1961년 5월 14일, 필리핀 마닐라 리잘경기장에서 열린 사이클 4개 종목 대회 1만m 경기에서 김호순이 우승한다. 이어 1962년 4월 8일 필리핀 루손도 일주 경기에서는 전체 2위를 차지해 당시 돈 미화 1천 달러의 상금을 수상한다. 그가 좀 더 일찍 태어났으면 엄복동과 겨뤄 어땠을까. 혹 ‘땅에는 엄복동, 김호순!’ 이런 말이 돌았을까. 그가 좀 더 늦게 태어났다면 오늘날과 같이 운동하기 좋은 조건에서 더 마음껏 내달렸을 것이다.

 김호순의 말년은 매우 불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300만 인천의 허(虛)는 김호순이든 이홍복이든 고장의 사이클 영웅들을 제대로 받들 줄 모르고, 기억조차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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