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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가포르의 한 식당에서 토지매매계약을 한 뒤 기념 촬영을 하는 랑룬·인천경제청·도시공사의 수장들.<사진=인천경제청 제공>
‘그들은 왜 식당에서 871억 원짜리 토지매매계약을 맺었을까?’ 랑룬(Longrunn) 그룹과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인천도시공사의 수장들은 2월 8일 오후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에 모여 의기투합(意氣投合)했다. 공사가 4년째 불신하고 있는 4조5천억 원 규모의 카지노 복합리조트 사업인 ‘랑룬 다이아몬드 시티’의 꺼진 불씨를 되살려 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들이 모인 곳은 기업의 회의실이 아닌 어느 식당이었다.

11일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인천경제청장은 2월 6∼9일 3박 4일의 일정으로 ‘싱가포르 항공방산 박람회’에 다녀온다고 출장을 갔다.

당시 청장은 경제청 실무자 3명을 데리고 가면서 정작 인천시 항공과나 공항공사 관계자 등 방산 및 항공정비 전문가는 단 1명도 대동하지 않아 의구심을 자아냈다. 청장 일행은 7일 창이공항 내에서 열린 박람회장에서 투자유치 IR(기관홍보) 활동을 펼쳤다며 사진과 보도자료를 내는가 싶더니 바로 다음 날 랑룬과 토지매매계약을 체결했다며 자료를 냈다. 이후 항공박람회에 대한 실적 보고는 자취를 감춰 버렸다.

랑룬과의 싱가포르 현지 계약 체결 일정은 청장의 주도로 신속하게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청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이를 부인했다. 그러나 취재 결과, 청장과 랑룬 회장의 만남은 지난해 11월 23일 시작됐다. 같은 해 12월 13일에는 청장이 싱가포르를 직접 방문해 랑룬 회장과 카지노 복합리조트 개발·협력 약정서를 맺는 관계로 발전했다. 랑룬 관련 업무로 청장이 싱가포르를 두 번 찾은 셈이다.

계약은 급하게 진행됐다. 계약 체결 전날 공사와 랑룬의 실무진들은 새벽 2시까지 계약서 조항을 뜯어고치고 번역하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양측은 이번 계약이 무효에 이르게 된 핵심 축인 기존 ‘하나은행 예치금(200만 달러)의 계약금 전환 여부’에 대해서는 계약서상 어떠한 단서도 남기지 않는 ‘우(愚)’를 범했다. 오히려 공사가 집착한 부분은 이번 계약은 계약금이 입금되기 전까지는 정식 계약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공사는 랑룬에 대한 불신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 결과 청장이 ‘2월 8일 토지매매계약을 체결했다’고 한 자료는 사실과 달랐다. "계약을 체결한 것이 아니라 돈을 내면 계약이 성립된다"는 일종의 ‘투자확약’을 한 셈이었다. 공사 사장은 이 같은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고서야 8일 오전 미단시티 투자유치 활동을 하러 간다며 싱가포르로 날아갔다. 8∼10일 2박 3일 일정이었다.

랑룬 회장과 청장, 공사 사장 등이 만난 곳은 싱가포르 플러턴 베이 호텔의 식당이었다. 이들은 식당 테이블 2개를 붙여 계약서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했다고 한다. 이례적 광경이 연출된 것이다. 이들은 ‘홍콩에 법인이 있다’는 랑룬 그룹의 회의실로 갈 수 없었다. 싱가포르에는 등록된 랑룬 회사가 없다. 랑룬 본사 사무실은 중앙아메리카 카리브해 북부에 있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British Virgin Islands)’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세 피난처’로 유명한 곳이다.

김진용 청장은 이에 대해 "2월 22일 이사회가 있다는 얘기도 랑룬 측으로부터 들은 적이 없으며, 계약을 서두르거나 한 것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계약은 정확한 룰에 의해서 진행됐고, 계약금 납부 시한도 랑룬이 충분하다고 한 만큼 약속을 못 지켜 끝난 계약에 대해 왈가왈부 할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김종국 기자 kjk@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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