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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겸 경기시인협회 이사
눈길이 닿는 모든 산과 들, 그리고 거리의 공원과 공공기관의 정원, 아파트 단지에는 온갖 꽃으로 치장돼 있다. 개나리, 진달래, 홍매화, 벚꽃, 목련 등 그야말로 만화방창(萬化方暢)이다. 유난히도 추웠던 지난 겨울, 생각해 보면 봄이 올 것 같지 않았는데 계절은 모든 권력의 힘을 물리치고 어김없이 꽃피는 봄을 창조해 놓았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세상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개나리, 진달래 꽃잎이 하나 둘 떨어지더니 이내 순결한 하얀 목련꽃도 ‘뚝뚝’ 슬픈 소리를 내며 땅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져 나뒹군다.

 그래서 선인들은 열흘 동안 붉은 꽃이 없다는 뜻으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이는 어쩌면 권력무상을 의미하며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과 맥락을 같이한다.

 권력은 타인을 지배하거나 복종시키는 공인된 권리와 힘으로서 소수의 의견에 다소 반하더라도 다수의 목적을 달성하거나 이익을 증대시킬 수 있다면 법과 원칙에 의한 제도적인 힘을 이용해 다수 의견에 힘을 실어주는 일종의 권한이다. 그러나 만약 주어진 권한을 벗어나 사인(私人)의 감정이 개입된다면 사회적 불균형과 갈등 요인이 작용돼 민심 이반 현상을 맞이하게 된다.

 장자(莊子) 양왕편을 보면, 열자(列子)가 궁핍으로 인해 수척한 얼굴을 하고 있자, 때마침 이 광경을 지켜보던 정(鄭)나라의 한 유학자가 나라의 재상 자양(子陽)에게 건의를 한다. "열자는 도를 터득한 청렴한 선비인데 당신의 나라에 살면서 가난에 시달리고 있으니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훌륭한 인물을 소홀히 한다고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를 것이다"라고 말하자, 자양은 관리를 시켜 곡식을 보낸다. 그러나 열자는 곡식을 사양했다.

그러자 열자의 아내가 원망스럽게 말하기를 "학문과 도를 터득한 사람의 처자가 되면 편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곡식을 보내주었는데도 받지 않으니 우리의 가난은 운명입니까?" 라고 따지며 원망을 하자 열자는 "자양은 스스로 나를 알아준 것이 아니라 남의 말을 듣고 내게 곡식을 보내준 것이오.

 그러니까 내게 죄를 주려고 할 때도 남의 말을 듣고 할 것이니, 그래서 곡식을 받지 않았소." 열자는 재상 자양이 법과 원칙을 벗어나서 자의적으로 권력행사를 하고 있는 현실을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현재는 몹시 궁색한 처지였지만 자양이 보낸 곡식을 사양한 것이다.

 법과 원칙을 벗어난 통치 행위는 어쩌면 백성들에게 신의를 잃게 될 것이며 머지않아 권좌에서 물러나게 될 것을 예감한 것이다. 그럴 경우 열자는 재상 자양에게 도움을 받고 살아 온 부도덕한 선비로 평생을 살게 될 것이며 백성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것 또한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몇 년 안가서 자양의 폭정에 가까운 엄혹함에 백성들은 분노해 반란을 일으켰으며 자양은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권력의 무상함이 눈앞으로 다가 온 것이다.

 요즘 종합편성 채널을 보면 과거의 권력과 현재의 권력, 그리고 미래의 권력에 대한 설화가 난무한다. ‘적폐청산’이다. ‘보복정치’다. 이러한 논쟁은 우리같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민초들에게는 혼돈을 일으킨다.

 특히,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지방권력은 신라 후기 국정을 문란하게 만든 지방의 호족세력과 같다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릇된 권력 속에서 아부하며 부역하는 관료들이 있다는 것이다. 중심을 잡고 오직 민초들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해도 모자라는 현 시점에서 임기가 만료되는 권력에 마지막 교지를 받으려고 아첨하는 관료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자숙해야 한다. 권력은 쾌락과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지배의 힘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민요에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 나니라’라는 노래가 있다. 평생의 권력과 영원한 권세가는 없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화려했던 꽃잎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환하게 세상을 비추던 보름달은 사라져 어둡고 컴컴한 그믐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요 진리니 우리는 오로지 세상에서 가장 평범함 법규인 인간으로서의 도리(道理)를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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