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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옥엽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최근 지방자치단체의 국립문화기관 유치가 그 지역 문화지수의 척도가 됐다. 그동안 국립문화기관의 불모지였던 인천에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자리했고 국립문자박물관이 조성되고 있으며 국립해양박물관 유치가 가시화되고 있다. 하지만 300만 인천시민의 문화생활 향유와 지수 확장을 위해서는 여전히 설립돼야 할 국립문화기관들이 많다.

 무엇보다 2030여 년 유구한 인천 역사의 흔적을 되새겨보면 정작 설립돼야 할 중요한 기관이 자리하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조선시대 사서(史書)를 보관했던 ‘정족산사고(史庫)’와 왕실도서관인 ‘외규장각’이 강화도에 있었던 역사성을 상기하면 ‘국립기록관’은 인천에도 분치(分置)돼야 할 것이다.

 실록을 사고(史庫)에 보관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부터였는데 특히, 고려 후기에는 실록의 완전한 소실을 막기 위해 수도인 개경에 내사고(內史庫)를, 지방에는 외사고(外史庫)를 두어 2원 체제로 운영했다. 조선시대에는 실록을 보관하는 장소가 전기와 후기에 차이가 있었다.

조선 전기에는 춘추관(春秋館)과 충주, 전주, 성주 등 4곳에 사고를 설치해 실록 1부씩을 보관했고, 후기에는 춘추관 외에 마니산과 오대산, 묘향산, 태백산 등 4곳에 사고를 뒀다. 이후 묘향산 사고는 후금(청)의 침입을 대비해 무주의 적상산 사고로 이전됐고, 마니산 사고는 병자호란으로 크게 파손되고 불까지 나면서 정족산 사고로 이전됐다. 정족산 사고의 자료들은 ‘정족산본’이라는 이름으로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외규장각은 임금이 쓴 글씨나 시문을 뜻하는 ‘규장(奎章)’이라는 의미처럼 어보(御寶), 어제(御製) 등 왕실 물품과 어람(御覽)용 의궤(儀軌) 등 왕실관계의 특별한 가치를 지닌 중요 기록을 보관하는 규장각의 분소, 외부 서고와 같은 기능을 가진 기관이었다.

 규장각이 창설된 지 6년 후인 1782년(정조 6년) 강화부의 행궁 자리에 세워졌다. 당시 수도 서울과 근접한 강화도에 사고와 외규장각을 뒀던 것은 왕실의 보장처라는 의미가 기저(基底)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고(史庫)’와 ‘외규장각’의 기능과 역할은 현재 ‘국가기록원’으로 이어졌다. 국가기록원은 1962년 5월 정부의 중요 기록물을 보존하기 위해 개설된 내각사무처의 총무과 문서촬영실을 모태로 하여 1969년 8월 총무처에 소속된 정부기록보존소로 시작됐고, 2004년 5월 지금의 국가기록원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소속기관으로 경기도 성남시의 대통령기록관과 나라기록관, 서울기록정보센터, 부산시의 역사기록관, 대전기록관, 광주기록정보센터 등이 있다.

 대통령기록관은 역대 대통령이 남긴 문서, 사진, 영상, 집기 등을, 서울기록관은 국무회의록을 비롯해 수도권·세종·강원 권역 기록 및 시청각, 행정박물 기록 등을 보존하고 있다. 부산기록관은 영남권의 중요 기록물을, 대전기록관은 충청·전라·제주 권역의 기록물을, 광주기록정보센터는 광주·전북·전남지역의 기록물을 수집, 보존, 활용하고 있다.

 그동안 인천은 수도의 관문이라는 시각에서 자의든 타의든 서울의 위성도시로 인식돼 왔다. 그러다 보니 인천의 역사적 정체성이나 주권의식도 서울의 일부분으로 여겨져 독자적인 의미를 궁구(窮究)할 수 있는 계기가 적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대체(大體)와 경쟁력은 지난 역사에서의 기록물과 그 보존 현황을 통해 판단할 수 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일본문서보관소, 러시아연방국립문서보관소, 영국 국립문서보관소, 중국 각 지역 당안관에 이르기까지 나라마다 기록물의 보존을 대단히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다.

 근·현대사의 부침 속에 근대화·산업화의 현장으로 끊임없는 변화와 시련을 극복해 왔던 인천은 지정학적으로도 국가 기록물의 한 축을 담당할 충분한 자격이 있는 공간이다. 현재 대한민국 제2의 도시를 지향하는 인천으로서는 역사적으로 사고(史庫)를 뒀던 보장처였음을 되새겨볼 때 적어도 인천·경기지역의 기록물을 수집, 보존, 활용할 수 있는 ‘국립인천기록관’이 설립돼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이것이 인천 주권의 시작이자 마침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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