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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오늘은 1960년 4·19혁명이 발발한 지 58주년이 되는 날이다. 4·19혁명은 국민의 힘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림으로써 우리 역사에 시민혁명의 금자탑을 세운 위대한 사건이다. ‘반독재 민주주의’를 주창한 4·19정신은 이후 부마항쟁과 5·18민주화운동, 6·10항쟁, 촛불혁명으로 역사 속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말하자면, 우리의 현대사는 국민들이 피와 눈물로 아로새긴 처절한 저항권 행사의 여정인 셈이다.

 저항권이란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탄압하는 독재체제에 대해 항거하는 국민의 권리를 일컫는데, 맹자의 역성혁명론(易姓革命論)과 중세의 폭군방벌론(暴君放伐論) 및 근세의 사회계약론(社會契約論) 등에서 그 이론적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이 헌법상의 권리로 등장한 것은 18세기에 들어와서인데, 독일 기본법 제20조 제4항은 저항권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 헌법은 저항권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전문(前文)에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라는 문구를 둔 것은 저항권을 실질적인 헌법적 권리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해석된다.

그런데, 저항권은 헌법에 이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느냐의 여부에 관계없이 자연법에 근거한 인간의 자연권으로 이해하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말하자면, 불의와 폭압에 맞서 싸울 권리는 천부인권적 기본권으로서 정의의 기본적 요청이라는 것이다.

 뒤돌아보면, 우리 민족은 오랜 저항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외세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태로울 때에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의병이 떨쳐 일어나 저항했고, 또 군주의 폭정이 극심할 때에는 민란으로써 조정과 관군에 저항했다. 흔히 국민을 ‘풀’에 비유해 ‘민초(民草)’라 부른다. 풀은 바람이 거셀 때에는 잠시 몸을 낮춰 눕지만, 종국에는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기 때문일 것이다.

 ‘풀’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함석헌(咸錫憲; 1901~1989) 선생이다. 그는 1957년 잡지 ‘사상계’ 3월호에 실린 ‘할 말이 있다’는 글에서 "나는 아무 것도 못되는 사람이다. 그저 사람이다. 민중이다. 민은 민초(民草)라니 풀 같은 것이다. 나는 풀이다!"라고 외쳤다.

그는 4·19혁명 10돌을 맞은 지난 1970년 4월 19일 ‘씨알의소리’라는 월간지를 창간해 박정희 정권하의 사이비언론에 맞서 참된 언론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해냈다. 그러나 ‘씨알의소리’는 창간 직후 곧바로 박정희 정권에 의해 강제 폐간을 당했고, 이후 법원 판결로 복간됐다가 전두환 정권하에서 거듭 폐간되는 탄압을 받았다.

그는 1971년 10월호 ‘씨알의소리’에 실린 ‘군인정치 10년을 돌아본다’라는 글을 통해 당시 군사정권의 폐부를 찔렀다. 표지 상단에는 ‘싸우자! 죽자! 다시 살자!’라는 구호가 있었다. 그는 항시 한복을 입고 하얗고 긴 수염을 날리며 도인 같은 이미지를 풍겼는데,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얼어붙은 야만의 시대에 "자유언론 없으면 죽음"이라는 일념으로 독재권력에 저항했다.

 그는 1976년 4월호 ‘씨알의소리’에 ‘누가 이 참의 바통을 받을 것인가?’라는 글에서 "뛰기는 실컷 뛰었다가 바통 넘겨주지 못하면 소용없고, 저 사람도 아무리 뛴다 해도 바통 받아 쥐지 않고 뛰면 소용이 없다. …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은 네가 받아라… 나는 이거 흔들었으니까 생각 있는 사람 바짝 붙잡아요!"라고 외쳤다.

다행히 그가 전한 ‘씨알정신’이 다수의 민초들에게 ‘바통’으로 전해져서 오늘날 ‘촛불정신’으로 되살아났다. 사실 ‘씨알정신’은 함석헌 선생 혼자서 가꿔온 게 아니다. 그와 함께 고초를 무릅쓰고 저항의 대오에 함께 섰던 사람들, 예컨대 장준하 선생, 문익환 목사, 지학순 주교, 계훈제 선생, 안병무 교수, 박형규 목사, 홍남순 변호사, 송건호 선생, 리영희 교수, 백기완 선생, 한승헌 변호사, 홍근수 목사, 함세웅 신부 등 많은 저항인사들의 삶의 궤적도 피와 눈물로 이어온 저항의 현대사 속에서 우리가 소중히 간직해 나가야 할 귀한 정신적 유산이다. 부디 씨알의 염원이 모여져서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이 이뤄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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