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너구리 새끼가 알아듣는 경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8년 04월 20일 금요일 제10면

최원영 행정학박사.jpg
▲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출생과 죽음 사이를 ‘삶’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삶이 만만치 않습니다. 고되고 힘겨운 일들로 가득하니까요. 그래서인지 많은 철학자들은 죽음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죽음의 의미를 알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6년 전, 어느 일간지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말기환자들을 돌봤던 브로니 웨어라는 간호사가 쓴 「죽을 때 후회하는 다섯 가지」라는 책이 소개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다섯 가지는 ‘내 뜻대로 살걸, 일 좀 덜할걸, 화 좀 덜낼걸, 친구들을 더 챙길걸, 그리고 도전하며 살걸’입니다.

 이 글을 접하면서 저는 ‘호기심’이라는 낱말이 떠올랐습니다. 삶을 ‘호기심’으로 바라보느냐, 아니면 ‘두려움’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삶의 질은 무척 달라집니다. 두려움으로 바라보면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겠지만, 호기심으로 바라보면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질 겁니다. 우선 상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말하기보다는 듣게 되고, 듣는 만큼 그 사람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겠지요. 이런 태도가 그와 나 사이를 더욱 더 깊은 우정으로 묶어줄 겁니다. 바로 지금 만나고 있는 그 사람에 대한 호기심은 그래서 아름다운 사랑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호기심으로 대하는 사람들은 책장을 펼칠 것이고, 동료의 조언과 가르침에 고마워하며 열심히 배울 겁니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자신의 일에 있어서는 전문가로 우뚝 설 겁니다. 이런 태도가 그를 성공의 문을 열어 젖히는 기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일이나 사람에 대한 호기심은 ‘관심’을 의미하고, 그 관심은 곧 ‘사랑’과 ‘성공’이라는 찬란한 열매로 되돌아올 겁니다.

 저자에 의하면, 죽음 앞에 선 그들은 놀랍게도 후회하는 내용들이 거의 비슷했다고 고백합니다. 다섯 가지 중에서 그들이 가장 많이 후회하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맞추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진실한 삶을 살 용기가 있었더라면!’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는 세상이 만들어놓은 잣대인 돈과 권력과 명예일 겁니다. 그것을 추구하겠다는 일념만으로 살아가다 보면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향유할 수 있는 감동과 기쁨을 놓치기 일쑤입니다. 그리고 순간순간의 호기심을 저버린 대가는 결국 그들처럼 후회와 원망뿐일 겁니다.

 그래서 행복하려면 스스로에게 ‘지금 나는 행복한가?’ 라는 질문이 필요합니다. 길가에 머리를 내민 봄꽃들을 경이롭게 바라보고 있는 나, 모처럼 황사에서 벗어나 환한 얼굴을 내민 맑은 하늘을 보며 탄성을 지르고 있는 나,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 가장 귀한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유쾌하게 웃고 있는 나!

 만약 우리가 이런 태도로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정녕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세상이 던져준 기준인 돈과 권력과 명예 따위는 그저 흘러가는 구름일 뿐일 겁니다. 톨스토이는 ‘언제, 어느 곳이, 그리고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라는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으로 ‘지금, 이곳에서, 내가 만나고 있는 당신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너’에게 도움 되는 일이 무엇인지 알려면 호기심으로 당신을 대해야만 알 수 있을 겁니다. 의사인 ‘내’가 환자인 ‘너’의 아픔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고쳐줄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꼼꼼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너’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치료를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젊은 원효가 평소 존경하던 노스님을 찾아갔더니, 노스님은 너구리 새끼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어미가 죽어 홀로된 새끼들을 데려와 돌본다는 거였습니다. 노스님은 젖을 구해오겠다면서 자리를 떠났고, 잠시 후 새끼 한 마리가 죽고 말았습니다. 어쩔 줄 몰라 당황하던 원효는 극락에 가라며 경을 읊어주었습니다. 다시 돌아온 노스님은 그런 원효를 꾸짖으며 멋진 깨달음의 한 말씀을 던집니다. "내가 구해온 이 젖이 너구리새끼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경이오."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저작권자 ⓒ 기호일보 (http://www.kihoilbo.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