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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새해가 되면 으레 연례행사처럼 하게 되는 일이 하나 있다. 달력을 펼쳐 놓고 가족의 생일이라든지 제삿날을 표시해 두는 일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더욱 신뢰도가 떨어진 내 기억력의 보완책인 셈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 일을 하면서 한 장 한 장 달력을 넘기다가 ‘지구의 날’이란 것을 발견했다. "지구의 날도 있었나?"

 4월 22일이 바로 지구의 날이란다. 1970년 4월 22일 미국에서 게이로드 넬슨이란 상원의원이 주창하고 데니스 헤이스라고 하는 대학생이 조직한 환경보호 촉구 워싱턴 집회에 환경운동가를 비롯해 의원, 시민, 각 지역단체, 각급 학교 학생 등 2천만여 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대규모 시위를 벌인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아직까지도 나는 내 주변에서 이런 행사에 참여하는 기관이나 단체를 본 일이 없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올해로 벌써 48회를 맞는다고 한다.

 지구의 날이 되면 세계 구석구석에서 지구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갖가지 활동이 펼쳐진다. 지구온난화 주범인 탄산가스 배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1시간 동안 전기 스위치를 끄는 ‘지구촌 1시간 소등행사’도 있다. 매년 3월 마지막 토요일에 뉴질랜드를 시작으로 서울을 거쳐 미국까지 지구를 한 바퀴 돌면서 시간대에 맞춰 전기 스위치를 끄는 행사이다. 전 세계 190여 개 나라에서 이날을 기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 남산에서 처음으로 지구의 날 행사가 개최된 이래 ‘차 없는 거리’ 행사와 같은 다양한 환경문제를 주제로 매년 열고 있다는데 나를 비롯해 내 주변 사람들은 정작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45억 년 지구의 역사를 1년에 비유한다면 인류가 지구상에 처음 나타난 것이 12월 31일 오후 다섯 시께 된다고 한다. 인류의 역사란 것이 지구 전체의 역사에 비하면 겨우 촌각에 불과하지만 인류가 등장한 이후 400만 년 동안 지구는 그 이전 수십억 년보다 훨씬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 셈이다. 그 변화를 만들어 온 주인공은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 인간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곳곳에서 생태계가 무너지고 기후 변화로 인한 지진과 쓰나미, 허리케인과 같은 재앙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들어 매일매일 고통이 되고 있는 최악의 미세먼지도 지구 재앙의 하나임이 분명해 보인다. 미세먼지 공습이라고까지 부르는 이 사태를 대하는 시민들은 겨우 마스크를 쓰는 정도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정부나 각 지자체, 그리고 교육 당국마다 봄철 미세먼지가 자주 나타날 것이 예상된다며 각종 예방과 피해 최소화 방안을 마련해 시행할 것이라며 나름 여러 대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그 효과는 크게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과 인천, 그리고 경기도 등 수도권 지자제에서 내놓은 미세먼지 대책만 봐도 근본 해결책은 잘 보이지 않는다. 교실에 공기청정기를 설치하고 미세먼지가 심각해지면 주의보 발령과 함께 노약자, 어린이, 호흡기·심혈관 질환자의 외출과 야외활동 자제 권고, 실외수업을 금지하고 학생들에게 마스크도 지급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도시 대기 측정소를 대폭 늘려 나가고 공해 차량 운행 제한 방안도 발표하고 있긴 하지만 미봉책에 불과해서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오늘도 미세먼지로 가득한 회색빛 하늘을 보며 ‘지구의 날’을 다시 생각한다. 환경부나 일부 지자체에서 지구의 날 행사를 마련해 추진한다고는 하지만 대개가 일회성 이벤트 행사에 불과한 것들이다.

 주요 공공 건물들과 공동주택 및 일반 가정을 중심으로 저녁 8시부터 10분간 소등행사를 진행하고, 1일 차 없이 출근하기 자율 실천 운동과 엘리베이터 단축 운행 실시, 그리기대회나 지구사랑 거리 캠페인을 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지구의 날은 매년 4월 22일 하루가 아닌 1년 365일, 일상이 돼야 한다. 미세먼지를 걱정하면서 정부나 관련기관의 대책만을 기다려서는 곤란하다. 어떻게 해야 파괴되고 있는 생태계를 살리고 고통으로 다가온 미세먼지를 줄일 수 있을 것인가를 스스로 생각하고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일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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