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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현주 안양동안경찰서 경무계 경사

늦은 오후, 5살 아들이 얼마 전부터 다니기 시작한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혹시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싶어 덜컥 겁이 났다.

 그런데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듣게 된 소식은 황당하게도 우리 아이가 무슨 일을 당한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가 또래 친구를 때렸다는 것이다.

 또래에 비해 키가 무척 크지만 말이 느린 편인 우리 아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친구가 가져가자 밀치면서 일어난 일이라는데, 아이를 똑바로 가르치지 못한 내 탓인 것만 같아 전화기를 든 채로 연신 고개를 숙이며 선생님께 죄송하다 사죄하고 다친 아이의 상태를 물었다.

 다행히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상대 아이의 부모 입장에선 얼굴에 난 상처를 보고 얼마나 속상할까 싶어 가슴이 답답해졌다.

 단단히 혼내줘야겠다 맘을 먹고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자마자 해맑게 웃으며 안겨오는 아들을 보니 눈물이 핑 돈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충분히 사랑으로 키워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이의 첫 번째 사회생활이라 할 수 있는 유치원에서 난 학교폭력 가해자(?)의 엄마가 된 셈이다.

 그 일이 있고나서 둘째 아이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며 아이의 감정을 읽어보려 애썼다.

 육아서를 찾아 읽다 눈에 띄는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학교 폭력사건이라 할 수 있는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사건의 가해자 엄마가 쓴 책으로, 이 사건으로 인해 13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부상당했으며 가해학생 2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들의 유치원 폭행(?) 사건이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이런 괴물 아들을 키운 파렴치한 부모가 책까지 펴낸 뻔뻔함을 비난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가해자인 딜런은 관심과 사랑을 주는 부모 아래에서 자란 평범하고 예의 바른 아이였으며 친구관계도 좋은 편이었다.

 다만 부모는 이 끔찍한 일이 있기 전에 아들의 깊은 우울증과 자살충동 징후를 알아채지 못했었다.

 뉴스에서 학교폭력 사건을 접할 때 흔히 "대체 저 부모는 아이를 어떻게 키웠길래"라며 문제 아이의 부모부터 탓하곤 한다.

 하지만 아이가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아이는 노출된 모든 환경으로부터 쉽게 영향을 받는다.

 즉 아이는 독립된 인격체로서 부모가 완벽히 통제하기란 불가능하며, 부모의 손길이 미처 닿지 않는 곳에서도 아이가 바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사회가 전제 돼야만 한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첫 번째 시작이 가정이라는 점은 여러 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딜런의 엄마는 아이들의 사소한 변화를 흘려보내지 말고 신경 써서 깊이 파고들라고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학교폭력 대책들은 주로 사건 발생 이후의 신고방법이나 처리절차 등에 더 비중을 두다 보니 표면적으로 문제점이 드러난 이후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

 학교폭력이 겉으로 드러나기 전에 먼저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제때에 적절한 도움을 주는 것, 우리 아이들이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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