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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지사 후보의 걸어온 길> 한국당 남경필- 민주당 이재명

쓴소리 마다않던 당내 개혁파 야당과 대연정 정치혁신 실현
인권 변호사로 정치 입문 결심 ‘3대 무상복지’ 파격 정책 성과

정진욱 기자 panic82@kihoilbo.co.kr 2018년 04월 23일 월요일 제4면

지난 20일 더불어민주당 경기지사 후보로 이재명 전 성남시장이 확정됨에 따라 여야의 대진표가 완성됐다. 일찍 후보로 확정된 남경필 경기지사에 이 전 시장이 도전하는 상황이 되면서 불꽃 튀는 선거전이 예상된다. 선거에 앞서 두 후보가 살아온 인생을 각 후보에게 들어봤다.

# 자유한국당 남경필 경기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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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의원 시절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는 한국당 남경필 후보.
‘소장파 의원에서 대한민국 정치 혁신의 아이콘으로.’

자유한국당 경기지사 후보로 확정, 6·13 지방선거를 통해 재선에 도전하는 남경필 지사는 1965년생으로, 짧은 기자 경력을 뒤로하고 젊은 시절부터 정치인으로서의 숙명을 살아왔다. 1998년 아버지 고(故) 남평우 의원이 국회의원을 지낸 수원 팔달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33세의 나이에 보궐선거에 출마, 당선된 청년 남경필은 이후 이곳을 기반으로 5선 국회의원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돌아가신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어 국회의원에 당선된 점은 이른바 ‘금수저’라는 지칭이 오랜 시간 달라붙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국회의원 시절 한나라당, 새누리당을 거치면서 원희룡 제주지사, 정병국 의원과 소위 ‘남원정’으로 불리는 여권 내 비주류 개혁파로 자리매김한 정치인 남경필은 MB정부에서 강단 있는 모습을 종종 보여 왔다. 여권 의원 신분으로 토건정책 위주의 MB정부 정책에 대해 경제정책으로 방향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는 한편, 4대강 사업 대신 교육과 복지에 투자해야 한다며 쓴소리를 하면서 마찰을 빚어 왔고, 이로 인해 불법 민간인 사찰 대상이 되기도 했다.

 국회의원 남경필은 기자 출신 특유의 뛰어난 언변과 이미지를 바탕으로 당 대변인 역할을 맡기도 했지만 원내대표 선거에서는 비주류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번번이 좌절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반면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을 지내면서 맺은 중국 정계와의 인맥은 지금의 남경필이 접경지역이자 환황해권 중심에 있는 경기도의 외교정책을 이끌어 나가는 데 큰 힘을 주고 있다.

 2014년 16년간의 국회의원 생활을 정리하고 새누리당 경기지사 경선에 뛰어든 남경필은 압도적인 격차를 보이며 후보로 확정됐고 고교 선배이자 지역 선배, 같은 교회 교인인 새정치민주연합 김진표 후보와의 경쟁에서 신승하면서 제35대 경기도지사에 당선된다.

 그는 취임 이후 이전까지 국내 정치인이 시도조차 해 보지 못했던 대연정을 펼치면서 여소야대로 구성된 경기도의회와의 협치를 이끌었다.

 특히 부지사에 야당 추천 인사를 앉히고 주요 정책 결정에 함께 하는 개혁적 정치실험 감행을 통해 대립의 정치가 상생의 정치로 바뀔 수 있는 기틀을 확보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성남시장

‘시계공장 소년 근로자가 탄핵 열풍 핵심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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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남시장 재임 당시 성남시립의료원 공사현장을 방문한 민주당 이재명 후보.
 이재명 전 성남시장의 유년시절은 온통 ‘회색’이다. 어린 시절 겨울이면 방 안에 둔 물그릇이 얼 정도로 가난했던 그는 ‘흙수저’보다 못한 ‘무수저’였다고 이야기한다.

 이 전 시장은 1963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났다. 10살 무렵 아버지가 돌연 집을 떠났고 남은 어머니와 7남매는 화전을 일구며 하루하루 힘겹게 생계를 유지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1976년 성남의 빈민촌에 정착했다. 남들은 중학교 교복을 입을 때 회색 작업복을 입은 ‘소년노동자’로 공장에서 일하며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공장 프레스기에 눌려 다친 후유증으로 왼쪽 팔은 장애(6급)를 얻었고, 손가락에는 고무조각이 박혔으며, 후각세포도 절반 이상 괴사하는 등 공장 생활은 거칠고 힘들었다.

 그는 ‘관리자가 되면 매 맞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공부를 시작, 고입과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대학 입학의 꿈을 키웠고, 결국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받는 장학생으로 1982년 중앙대 법대에 입학한다. 1986년 사법시험(연수원 18기)에 합격한 이 전 시장은 ‘군사정권의 주구가 되지 않겠다’는 소신과 집 안 형편 사이에서 갈등하다 인생의 방향을 ‘공익적 삶’으로 설정, 인권변호사의 길을 택한다.

 변호사 시절 그는 노동과 인권 변호에 매진했다. 시민들과 ‘성남시민모임’을 창립, 시민운동에도 뛰어들었다. 당시 그의 큰 꿈 중 하나는 ‘시민병원 설립’이었다. 공공의료원 설립을 목표로 시민 2만 명과 뜻을 모아 주민 발의로 시립병원 조례안을 만들었으나 시의회 날치기로 폐기되면서 이 전 시장은 시민의 권한을 대리하는 시장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그렇게 2010년 51.2%의 득표율로 성남시장에 당선됐고, 2013년 성남시의료원 착공 버튼 눌렀다.

 2014년 성남시장 재선에 성공한 그는 청년배당·공공산후조리원·무상교복 등 파격적인 성과들을 만들어 왔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자 이 전 시장은 촛불을 들고 ‘박근혜 퇴진’을 외쳤고, 2017년 민주당의 대선 경선 주자로 발돋움하며 ‘정의롭고 공정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소명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제 민주당의 경기지사 후보로서 16년 만의 ‘경기도 탈환’을 꿈꾸고 있다. 이 전 시장은 "경기도에서 그 쓰임을 다하라는 도민들의 명이 있다"며 "경험과 실적, 성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경기도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정진욱 기자 panic82@kihoilbo.co.kr

  남궁진 기자 why0524@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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