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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사이다와 경인합동음료주식회사

김윤식 전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시인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8년 04월 25일 수요일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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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식 전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인천에서 청량음료회사의 기원을 따진다면 1905년 2월 일본인 히라야마 마츠타로(平山松太郞)가 창업한 인천탄산수제조소(仁川炭酸水製造所)가 효시일 것이다. 이 회사가 생산한 ‘성인(星印)’이라는 상표의 사이다가 원조라는 이야기이다. 주소는 중구 신흥동 2가 28이었다. 다음이 1910년 5월, 나카야마 우노키치(中山宇之吉)가 신흥동 1가 30에 설립한 라무네제조소이다.

여기서는 ‘라이온’ ‘헬스‘라는 음료를 내놓았다. "신흥동 해광사와 같은 언덕에 중산(中山)이라는 일본인이 라무네라는 싸구려 음료수를 만드는 소규모의 공장을 세워 빙수밖에 없던 여름 시원한 마실 거리를 선보였다"는 신태범(愼兌範) 박사의 「개항 후의 인천 풍경」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신흥동 해광사와 같은 언덕"이라는 부분에서 위치의 상이를 알 수 있다.

 마지막이 흔히 거명하는 경인합동음료주식회사(京仁合同飮料株式會社)다. 이 회사는 1937년 2월 19일, 메라묘시(目良卯市)가 대표이사로 서울 용산구 갈월동 8에 설립한 청량음료 회사다. 이 회사의 인천지점 주소가 신흥동 1가 8로 "신흥동 해광사와 같은 언덕"이라는 구절에 들어맞는다.

그리고 이곳이 언필칭 인천 사이다의 발상지로 지목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여기서 또 살펴볼 것이 경인합동음료주식회사 인천지점장이 히라야마 쇼지(平山初次)라는 사실이다. 그는 인천탄산수제조소 창업자 히라야마 마츠타로와 성이 같은 것으로 보아 부자간 아니면 친척간이었던 것 같다.

 그는 경인합동음료주식회사 인천지점장이 되기 전에 이미 인천탄산수제조소 경영자로 「인천부사」에 기록돼 있는 인물이다. 또 히라야마 쇼지가 경인합동음료주식회사 창업 당시부터 나카야마 묘노키치(中山卯之吉)와 함께 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나카야마 묘노키치 역시 성과 이름으로 보아 라무네제조소 설립자 나카야마 우노키치와 형제간인지 모른다.

1939년 기록에 보면 나카야마 우노키치까지도 주주로 참여한다. 그렇더라도 인천탄산수제조소는 1932년까지는 기록에 남아 있다. 여기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이 1937년 인천탄산수제조소와 라무네제조소가 경인합동음료주식회사에 통합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아마 인천의 앞선 연조(年條)와 기술로써 서울 자본과 합병해 더 큰 시장을 노렸던 듯싶다. 그래서 ‘경인합동(京仁合同)’이라는 상호 속에 사이다 원조 인천을 표시하고, 동시에 지점을 인천에 두기로 결정했다는 추측! 물론 ‘성인’ 상표도 살아남아 ‘스타 사이다’가 되었을 것이고.

 광복 4년 후인 1949년, 경인합동음료주식회사는 한국인 고흥찬(高興讚)이 대표가 된다. 서울 사람인 고흥찬은 경인합동음료주식회사가 창립되던 당시부터 한국인으로서 유일하게 상무이사로 참여해 끝까지 이사직을 갖고 있었다.

 일찍부터 감천사(甘泉社)라는 청량음료 제조회사를 운영하던 사람으로 알려졌다. 기록이 없어 저간의 사정을 확인할 수는 없으나, 7년 후인 1956년 자료에도 여전히 고흥찬이 대표로 돼 있다. 본점은 용산구 갈월동 8에, 그리고 지점은 신흥동 1가 8에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제품은 사이다와 주스였으며 사이다의 상표는 ‘스타 사이다’였다. 신문지상에는 ‘뉴 스타 사이다’와 ‘하이 코라’ 광고가 보인다. 의문스러운 것은 1957년 12월, 경인합동음료주식회사의 본점이 신흥동 1가 8로, 그리고 대표 역시 김명순(金明淳)으로 바뀐다는 점, 그러면서 같은 해 12월의 다른 기록에는 여전히 서울의 고흥찬이 대표로 신흥동에 지점을 두고 있다는 점. 어쨌든 "광복 후 손욱래(孫旭來)가 이 공장에서 사이다를 만들다가 도중하차하고 서울 사람이 이 시설을 갖고 올라가서 칠성사이다를 만드는데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는 신 박사의 기록과는 차이가 난다.

경인합동음료주식회사 내력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인천의 청량음료, 곧 사이다의 역사가 깊은 것만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1930년대 후반에 들어 사이다의 본산이 서울로 바뀌었다는 사실, 즉 경인합동음료주식회사가 순전한 인천 회사가 아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다만 자료 부족으로 앞서의 추측과 의문을 풀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더 넓은 연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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