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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나이가 들어 퇴직을 한 노인이 시끄러운 도시생활을 접고 한적한 시골로 이사를 했습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휴식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겠지요. 아침에 눈을 뜨면 우선 맑은 공기와 새들이 첫인사를 하고 온갖 먹을거리들은 신선하다 못해 먹기가 아까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오후가 되면 학교를 다녀온 꼬마들이 하필이면 노인 집 앞에서 시끄럽게 노는 게 아닌가요. 소리쳐 쫓아내면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몰려와선 고함까지 질러대곤 합니다. 어떻게 하면 꼬마들이 다시는 그러지 않게 할 수 있을까요? ‘과잉 정당화 효과’라는 심리학적 발견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즐겁게 하고 있던 일에 어떤 보상이 주어지면 오히려 그 일에 흥미를 잃게 되는 현상을 뜻합니다. 어떤 행위를 호기심으로 대하면 재미도 있고 흥미도 느끼지만, 어떤 보상이 주어지면 이내 그 보상에 익숙해지거나 또는 보상이 중단됐을 때는 그 행위 자체에 대한 즐거움은 사라지게 됩니다.

 심리학자들이 유치원생과 초등생들을 대상으로 실험해보았습니다.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면서 ‘아주 잘했다’를 알리는 리본을 주는 등의 보상을 주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비교해본 겁니다. 결과는 놀랍게도 우리의 상식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보상받은 아이들의 경우에는 그림그리기에 대한 흥미를 잃고 말았으니까요.

 우리가 하는 행위는 대체로 두 가지 동기 중 하나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는 자기 스스로 내켜서 하는 경우(내적 동기)이고, 다른 하나는 외부의 보상이나 처벌 때문에 하는 경우(외적 동기)입니다. 스스로 내켜서 재미있게 하던 일에 어떤 보상이 주어지면 자기가 하는 행동을 보상으로 정당화시키게 되는데, 그 정당화가 지나치다고 해서 ‘과잉 정당화 효과’라고 부릅니다.

이제 노인의 고민거리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과잉 정당화 효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꼬마들을 불러놓고 말했습니다. "얘들아, 오늘부터 너희가 놀면서 가장 크게 고함을 지르는 사람에게 내가 용돈을 주겠다!"라고 했습니다. 노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온 동네가 떠나갈 듯이 소리치기 시작했습니다. 놀이가 다 끝나면 노인은 약속한 대로 용돈을 주었죠.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주었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용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용돈도 안 주는데 우리가 왜 소리를 질러야 해?"라며 놀지 않고 돌아가 버린 겁니다.

 이젠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해 볼까요. 처음에 아이들은 그저 재미있어서 놀았습니다. 그러나 용돈이라는 보상이 아이들의 재미를 빼앗아 버린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즐겁게 살 수 있는 지혜를 하나 배울 수 있습니다. 바로 내적 동기, 즉 ‘나’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을 할 때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물론 그런 행위가 남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당연히 해서는 안 되겠지요.

 행복한 삶은 이렇게 단순할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거나 내가 해야만 하는 일에 가치나 의미를 담아낼 때 행복을 느끼곤 합니다. 그것이 쌓여 최고의 전문가로 거듭나기도 하겠지요. 그래서 현자들은 행복하려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조언해주는지도 모릅니다.

이 말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재미있게 하라는 의미라고 해석해도 무방할 겁니다. 영국의 시골에서 태어난 조앤 롤링이라는 여성이 있었습니다. 공상하기를 좋아하는 탓에 직장에서도 쫓겨날 만큼 일에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근무 시간 중에도 종일 먼 산을 쳐다보며 딴 생각에만 빠져 있으니 쫓겨날 수밖에 없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상을 할 때만큼은 행복했습니다. 훗날 그런 자신의 상상을 글로 적었습니다. 이것이 「해리 포터」로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마주하고 있는 일을 즐기는 ‘내적 동기’에서 행복은 스며듭니다. 그래서 비가 오면 ‘내’가 비가 되어 함께 놀고, 눈이 오면 ‘내’가 눈이 되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진정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요.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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