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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기호일보 DB
‘꽃게 전쟁’이 사라질 전기를 맞았다. 연평도 수역을 포함한 북방한계선(NLL)은 늘 전장(戰場)이었다. 남북은 꽃게잡이를 놓고 잊을 만하면 국지전을 서슴지 않았다.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침몰까지, 남북은 진혼(鎭魂)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남북 정상들은 NLL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조성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현실화하기까지 고비들은 적잖을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사 3·19면>

남북 정상은 지난 27일 ‘판문점 선언’에서 서해 NLL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안전한 어로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실제적인 대책을 세워 나가기로 합의했다. 해양수산부는 곧바로 관계 부처 협의를 거쳐 평화수역과 관련한 후속 조치와 이행 방안 마련에 들어간다. 다음 달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을 통해 서해 긴장 완화를 위한 군사 실무 협상도 시작된다.

남북은 NLL을 둘러싸고 숱한 갈등을 빚어왔다. 1953년 휴전 직후 UN사령부는 NLL을 설정했다. 남한의 실질적인 영토경계선이라고 주장하며 지금의 NLL을 고수해 왔다. 반면 북측은 NLL을 부정했다. 38선을 기준으로 NLL설정을 요구했다. 이럴 경우 서해 해상분계선은 덕적도 인근 해상까지 남쪽으로 내려온다. NLL은 ‘꽃게 전쟁’으로 불리는 비극을 잉태하고 있는 셈이었다.

1999년 6월 15일 제1차 연평해전이 터졌다. 북한 등산곶과 5.5㎞, 남한 어로저지선과 11㎞ 떨어진 연평도 인근 북방한계선 이남 해전으로 남한 해군 11명 경상, 북한군 30명 사망, 70명이 다쳤다. 2002년 6월 29일 연평도 인근 북방한계선에서 충돌이 벌어졌다. 제2연평해전이다. 북한군의 기습 공격으로 우리 측 고속정 357호는 바닷속으로 가라앉았고, 고(故) 윤영하 소령 등 장병 6명이 싸늘한 주검으로 변했다. 2010년 3월 24일과 11월 23일에는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사건이 발생했다.

NLL인근 수역은 꽃게의 산란장으로 제철 그물질 한 번으로 1억 원의 수입이 왔다 갔다 할 정도의 황금 어장이다. NLL 사이에 두고 남북은 서로 한계선을 넘나들며 더 많은 꽃게를 잡으려고 난리를 쳤다. 2003년부터 나타난 중국의 쌍끌이 어선은 한때 700여 척에 달할 정도로 극성이었다.

남북 정상이 합의한 평화수역을 조성하는 데는 숙제들이 많다. 먼저 평화수역의 범위 설정이다. 현재 NLL경계선과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해상경계선과의 절충안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평화수역에서의 조업 방법과 입어료 산정이 선결돼야 한다. 선박의 성능과 조업기술을 놓고 보면 우리 측 어선이 북한 어선을 월등히 앞선다. 같은 조업시간에도 남북한 어선의 어획량은 천양지차일 수 있다. 이럴 경우 북한 측은 조업을 포기하는 대신 평화수역에 진입하는 우리 측 어선을 대상으로 입어료를 요구할 수 있다.

이보다 더 큰 과제는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으로 어장으로서 이미 한계를 보이고 있는 평화수역의 어자원을 어떻게 조성하느냐다.

이창호 기자 ych23@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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