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 연구소장1.jpg
▲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딱 1년 전, 한반도는 전쟁 위기설에 휩싸였다. 북한의 핵 실험과 미국의 강경 대응 등으로 위기감은 공포 수준이었다. 정작 우리보다 중국과 일본이 더 난리였다. 중국에서는 한국에 유학하고 있는 자녀들에게 전화해 귀국을 종용하는가 하면 사드 문제도 있었지만 한국 여행이 기피 대상이 됐다.

일본은 의도적인 부풀리기로 추락하는 아베 총리의 인기를 되살리느라 앙까님(?)을 썼다.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책,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통해 이런 분위기를 일거 바꿔 놓았다.

 앙앙불락하던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모든 위대한 사람들은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트위터에 올리면서 좋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고, 중국 외교부의 루캉 대변인은 "축하와 환영의 뜻을 표한다"고 전하면서 중국이 계속 적극적 평화체제 구축에 정전협정 당사국으로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일본의 아베 총리는 "한국 정부의 노력을 칭찬하고 싶다"면서 저팬 패싱을 돌파해 한반도 문제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들어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미국과 중국, 일본의 이런 변화 저변에 각국의 이익이라는 셈법이 있다. 자국에 유리할 때 외교적 수사는 화려해지기 마련이다.

특히 군사·경제 분야에서는 더 그렇다. 국내에서도 저잣거리 셈법은 기대감으로 부풀고 있다. 건설 업종에서는 남북 경협사업 주도권을 쥘 수 있는 현대건설, 러시아 사업 경험이 있는 대림산업이 꼽히고, 시멘트 업종에서는 북한으로 수송이 용이한 쌍용양회와 아시아시멘트, 조선 업종에서는 러시아로부터 VLCC 수주 경험이 있는 현대중공업과 야말 LNG선 수주 경험이 있는 대우조선해양, 물류 업종에서는 해외 M&A 및 협력 강화 등 북방 물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CJ대한통운, 남북러 가스관 도입 측면에서 한국가스공사 등이 수혜를 받을 것이란 이야기가 벌써부터 나돈다.

 남과 북, 북미 협상으로 만들어질 평화는 더없이 중요하다. "이게 나라냐!" 광장에서 터졌던 시민들의 분노에 힘입어 새 정권을 세운 지 1년 안에 거대한 폭풍처럼 다가온 남북의 화해무드는 혹시라도 마가 낄까봐 조바심할 정도로 소중하다.

 하지만 이것으로 우리의 모든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될까? 이번에 성큼 다가온 평화 무드는 우리 사회가 또 다른 평화로 도약하는 디딤돌이 돼야 한다. 전쟁의 종식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평화, 인간의 존엄과 평등은 물론 자연의 존중과 보살핌으로 전진해야 한다.

삶의 안녕을 파괴했던 과거의 결정과 정책이 아직도 법과 행정이란 이름으로 버젓이 힘을 발휘하고 있는 오늘이다. 존엄과 평등, 존중과 보살핌의 요구는 돈과 권력, 풍요와 편리라는 현실의 요구 앞에서 번번이 힘을 잃고 맥없이 쓰러지는 현실이다. 사회만 그런가? 일그러진 사회의 모습은 개인의 내면을 비춰준다. 지금의 사회 현실을 빼닮은 우리의 마음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다. ‘땅콩 회항’과 ‘물컵 갑질’의 천박함이 대한항공 조 씨 가족들만의 모습은 결코 아닌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체제 정착으로 전쟁의 가능성이 종식되고 남과 북이 번영과 풍요의 미래를 향하는 것은 우리의 간절하고 오랜 소망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정의로운 사회가 실현되지는 않는다는 현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십 년 넘게 직장에서 쫓겨나 거리를 헤매는 해고 노동자들, 권력의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정책으로 고통과 억울함을 겪고 있는 시민들, 명절이 더 서러운 사람들의 눈물이 방치되는 한 풍요와 번영은 공염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으로 얽히고설킨 실타래의 첫 매듭이 풀렸다.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의 감격과 흥분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도전에 대비해야 한다. 지난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에 겪었던 감격적인 순간이 그동안 어떤 경로로 우리에게 실망을 주었는지도 살펴봐야겠으나 무엇보다도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진행돼도 우리 자신이 보다 큰 차원의 꿈을 위해 내면의 변화, 현실의 요구보다 정의의 요구를 기꺼이 앞세우겠다는 개인들이 훨씬 많아져야 하겠다는 것이다.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