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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호림 칼럼니스트
다수의 생각은 항상 선이고 옳은 것일까? 그러하다면 그들이 최고 권력자의 위치에 올랐을 때, ‘다수의 횡포’를 행사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누구나 가지게 된다. 존 스튜어트 밀은 150년 전 그의 「자유론」에서 이러한 횡포를 경고하고 있다.

 왜 그는 이런 두려움을 느꼈을까? 이는 곧 정치체제와 제도로서 구가되던 그 당시의 민주주의에 대한 실망이었다. 민주주의란 ‘개인(인민)의 자기지배’가 돼야하나, ‘각자가 스스로를 지배하기’보다는 ‘반대편의 나머지 사람들에 의해 지배’받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횡포로부터 진정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방안으로 밀은 대의민주제를 주장했다. 이와 같이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그 지향하는 가치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릴 수 있다. 우리의 헌법은 그 가치를 ‘자유민주주의’라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으며, 많은 선진국들 또한 이를 인류가 추구할 보편적 가치로 소중히 여기고 있다.

 학자들이 정의하는 ‘자유민주주의’란 헌법에 개인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권을 명시하는 입헌주의, 국가권력의 남용에 의해 침해받지 않도록 3권 분립의 견제와 균형 장치, 법치주의, 국민주권과 대의제 민주주의의 작동과 자율적 영역인 시민사회의 존재가 전제돼야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자유민주주의’체제가 점차 지구촌에서 후퇴하고 무력해지는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경고하듯 미국의 외교전문지인 ‘포린 어페어스’ 5/6월 호는 ‘민주주의는 사라질 것인가?’라는 제목의 특집에서 미국을 포함해 중국과 동구 등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다양한 각도에서 진단하고 있다.

 흔히 민주주의의 퇴보는 중앙정부의 권력집중화, 사법의 정치화, 권력의 언론방송 장악, 공적기관의 사적이익 도구화 등 권력 남용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실패한 이민정책, 도시와 농촌간의 성장 불균형, 중산층의 소득침체와 부의 양극화현상이 현대 산업사회의 부담이 된다. 이러한 경제적 불안정이 시민들의 다양한 이해관계에 노출될 때 인기영합주의가 작동한다. 이때의 인기영합주의는 지도자들이 자기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 외국인 혐오주의가 내재된 반 이민정책과 민족주의 그리고 권위주의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사실을 뒤집어보면 많은 자유 세계 국가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한 것은 그 규범이나 가치의 문제뿐 아니라 그 모델이 경제성장과 지정학적 성공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차 자유민주주의의 시장경제가 세계 시민의 생활 수준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키지 못하게 되자, 자유주의를 거부하는 인기영합주의 운동이 1995∼2017년 세계적으로 일어나게 됐고, 선진국에서도 극단적인 정당이 선거에서 세를 규합해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은 위기에도 불구하고 처칠의 말과 같이 민주주의가 다른 어떤 대안보다 선호되는 제도임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 체제에서 유권자들은 그들의 대표자를 무혈로 바꿀 수 있고, 시민은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으며, 거짓 선동자를 가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자유민주주의란 인류문명의 오랜 역사에 비해 비교적 새로운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 핵심요소인 권력 분산, 인권, 사상·언론·행동의 시민적 자유, 의사표현과 결사의 자유, 복수의 미디어 존재,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라는 개념은 20세기 이전에는 확립되지 않은 가치였다. 그러므로 이 제도가 지구촌에 정착하기에는 국가마다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민주주의 후퇴가 영구적인지의 여부는 사회가, 정부의 합리적 역할과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능력에 달려 있다. 더욱이 극심한 불평등은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는 경제적·사회적 불평들을 지혜롭게 해소시켜, 경제적·정치적 안정은 물론, 시민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지속가능한 경제정책을 운용해야 한다.

 이제 우리를 돌아보자. 인류 보편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를 명시한 헌법조문이 과연 지켜질 수 있는지? ‘다수의 전제나 횡포’로부터 소수의 의견이 무시되거나, 조작 또는 잘못된 ‘집단여론’으로부터 개인의 자율성을 침해받는 일은 없을 것인지? 밀이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생각과 의견의 자유’와 ‘개별성 발휘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인지? 이러한 자유를 시민이 누리기 위해서는 경제의 안정이 전제돼야 한다. 불안한 것은 정부의 반시장적으로 보이는 일련의 경제정책이 과연 성장과 고용을 실제로 이뤄낼 수 있는지의 여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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