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숙.jpg
▲ 박현숙 화성동부경찰서 행정관

우리 속담에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이 있다. 강자들의 싸움에 약자들이 해를 입음을 비유하는 속담으로 약자의 인권은 예전에도 힘을 잃고 유린 당한 지 오래됐다.

그럼 지금은 어떠한가? 본인을 고래라 착각하는 자들로 인해 약자의 인권을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고 있지는 않는가!

아직도 사회적 약자들을 괴롭히며 그들의 인권은 무시해도 된다는 비합리적 생각으로 약자들이 살아가기 힘든 사회가 돼 버린 건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우리 아들은 키가 작다.

그래서 덩치가 큰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기도 하고 작은 폭행조차 감수해야 하는게 늘 고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키가 큰 아이가 자꾸 건드려서 괴롭다"며 엄마가 경찰서를 다니니 대신 싸워주면 안되겠냐고 부탁을 했다.

한 번도 놀림 받아 힘들어 한 적이 없던 아들이었기에 걱정도 됐지만 이런 일로 어른인 내가 굳이 나서야 하나 고민끝에 ‘별일 없겠지’ 생각하고 아들말을 무시해 버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 복도에서 누군가가 아들을 밀어 머리를 다쳤다는 연락을 받았다. 물론 가해자는 아들이 얘기하던 그 친구였다.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하며 힘들어 하던 아들의 얘기를 무시한 죄책감과 엄마가 대신 해결해달라고 도움을 청했던 손길을 그저 듣기만 했던 내가 얼마나 바보스럽고 죄스러웠는지 마음 한편이 무겁고 답답했다.

만약 내가 아들의 SOS에 응답을 하고 아들을 도왔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후회만 되고 너무 괴로웠던 그날이 떠올랐다.

분명 지금 이 시간에도 강자들에게 짓밟힌 약자들은, 그들의 인권을 찾기 위해 경찰들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강자들에게 무시당하며 눈물로 힘들게 살고 있는 그들을 위해, 경찰들은 강자들과의 전쟁을 선포해 약자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무조건 약자(弱子)편에 서야 하는 걸까?

그 답은 강자(强者)보다는 약자(弱子)편에서 보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적인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감수해야 하는 편견과 차별은 그들에게 더한 박탈감과 고통이며, 그 문제의 해결은 경찰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함께할 때 오랜 시간 짓밟힌 그들의 인권은 서서히 힘을 얻어 희망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며, 본인들을 고래라 착각하는 강자들 또한 이 세상에서 점점 사라지게 만드는 일 또한 우리 ‘인권경찰’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인 것이다.

인권경찰은 강자의 중심이 아닌 약자의 중심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인권 기본원칙 등을 준수해 약자들과 함께 걸어갈 것이며, 그 길만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살맛 나는 세상, 멋진 세상으로 한걸음 더 다가가는 것이 아닐지 인권 담당자는 오늘도 그 멋진 세상을 꿈꿔 본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