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훈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jpg
▲ 박제훈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
4·27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선언 이후 한반도와 동북아에 봄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지난 연말만 하더라도 당장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하던 것을 생각하면 금석지감(今昔之感)이 든다.

북핵 폐기와 이에 따른 한반도에서의 평화체제 구축 가능성은 앞으로 있을 북미정상회담 결과가 나와 봐야 좀 더 구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북핵 폐기를 진정 결심했다면 그 배경은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고강도 제재 강화 조치와 전쟁 불사 의지를 지적한다. 나는 지역통합이나 지역협력의 촉매 기능으로서 위기의 역할을 강조하는 소위 지역통합의 위기모델(crisis model)을 주장해 왔다.

 이 모델에 따르면 위기가 파국 직전까지 고조되다가 최고점(critical point)에서 극적인 타협과 양보가 만들어지면서 위기가 해소되고 역내 국가 간 협력과 통합이 시작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지난 1994년 이후 지속돼 온 북핵을 둘러싼 한반도에서의 위기는 진정한 위기가 아니었다. 진정한 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타협이나 양보가 없었고 그래서 북핵 사태는 지속돼 온 것이다.

 북한이 그동안 모든 어려움을 무릅쓰고 핵을 개발한 것도 미국이나 주변국이 북핵을 실체로 느끼지 않으면 절대로 북한과 타협이나 협상을 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 시절 미국의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 정책도 결국은 북한의 핵 개발이 허풍이고 조만간 북한체제가 붕괴할 것이라는 판단이 근저에 깔려 있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김정은 정권 출범 후 핵을 완성하고 장거리미사일로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한 것도 결국은 북한 체제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유효한 협상카드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구체적 핵 폐기 일정과 프로세스가 합의될 경우 올해 말 정도에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한반도에서 평화체제의 근간이 구축될 것이다. 한반도의 종전체제와 분단체제가 평화체제로 바뀌게 되는 것이며, 1945년 해방 이후 고착된 분단체제와 1953년 이후의 종전체제가 각각 73년과 65년 만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이 경우 우리의 사고 패러다임에서의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가 준비돼 있는가를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당장 남한 내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놓고 야당의 생각이 많이 다르다. 당초 남북정상회담 만찬에 야당도 초청했어야 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나는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대내적 통합을 이뤄야 하고 그 다음에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를 중심으로 지역통합이 이뤄진 후 최종적으로 통일이 이뤄질 수 있다는 소위 ‘삼통론’을 제시한 바 있다. 평화체제 구축이 곧 바로 통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북한의 급변사태에 따른 붕괴 시나리오보다 최종 통일의 길은 훨씬 멀어진 것일 수 있다. 평화체제 구축은 남북 간의 통합체제 구축으로 이어져야 한다.

 남북 간의 통합체제 구축은 양자 간의 통합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북한의 주변국과의 다자 간 통합이 같이 진행돼야 한다. 앞의 ‘삼통론’에서 중간 단계인 지역통합이 남북 간의 통합과 병행해서 같이 진행돼야 한다.

벌써 북핵 폐기 이후 북한이 마음먹기만 하면 언제든지 다시 핵무장을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북한이 남한을 포함한 주변국과의 경제나 사회통합이 충분히 진행되면 이러한 우려도 불식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통합을 체계적이고 불가역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도 우리 내부 구성원들의 생각과 마음의 통합이 이루어지는 대내적 통합이 중요하다. 생각과 마음의 통합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기존 생각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모든 것을 피아와 선악, 흑백으로 구분하는 데에 익숙해졌던 분단체제의 유산인 흑백논리와 양 극단적 사고방식을 청산해야 한다. 평화체제는 북한과 공존하고 공영하는 사고방식을 전제로 한다. 이는, 결국 남한 내에 아직도 팽배해 있는 지역 간, 세대 간 및 이념적 대립과 갈등을 청산하고 더불어 같이 사는 화해와 통합의 정신이 길러져야만 가능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로 한반도에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질서가 자리잡게 만들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았다. 북핵 폐기와 평화체제 구축의 성패는 결국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고 분열과 갈등 대신 통합의 마음으로 바꾸는 데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대통령부터 중용의 정신에 입각한 통합의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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