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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봉별(逢別)

김락기 시조시인/객원논설위원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8년 05월 23일 수요일 제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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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락기 시조시인
세상은 온통 봉별(逢別)의 연속이다. 만남과 헤어짐은 숙명처럼 우리 곁에 있다. 그런데 대개는 매순간 영생할 것처럼 지낸다. 이른바 이 시대 한국 3대 철학자의 한 분으로 불리는 고 안병욱 선생은 "인생은 만남이다"라고 했다.

20세기 중엽의 독일 작가 한스 카로사(Hans Carossa)의 이 말을 인용하던 그의 간명한 언변을 기억한다. 이는 거꾸로 "인생은 헤어짐이다"라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일 게다. 이즈음 우리는 대중가요 노사연의 ‘만남’을 노래한다. 만남은 우연이 아니며 운명이라고 한다. 돌아보지 말고 사랑하잔다. 돌아보고 후회하는 것, 나아가 헤어짐의 대중가요라면 배호의 노래를 들 수 있겠다.

 스물아홉 짧은 인생을 살면서 남긴 이별을 주제로 한 명곡들. 저 멀리 프랑스에까지 재즈로 편곡되어 불릴 만큼 독특한 그의 노래는 시대와 국경을 넘어 울리고 있다. ‘영시의 이별’이나 이승과의 고별 노래 ‘마지막 잎새’를 들어보라. 심장으로 부르는 그의 노래는 헤어지는 것을 단지 끝남이 아닌 긴 여운으로 아롱져 준다. 어디 인생에만 봉별이 있는가. 온 누리 만상이 죄 피할 수 없는 것이 봉별이다.

 글을 쓰는 이 순간도 한 시공과 헤어지고 또 새로운 시공을 만난다. 무상이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는다고 만해는 ‘님의 침묵’으로 읊었다. 이처럼 봉별은 두 축의 톱니바퀴처럼 서로를 물고 돌아가는 관계다. 우리네 일상에서 시시때때로 수수만년 겪고 있는 봉별이건만 그 실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모르기 때문에 이 무거운 주제를 감히 건드려본다고나 할까. 생로병사라는 석가모니 부처의 사고(四苦)도 줄여보면 봉별에 와 닿는다. 종교적 주제로까지 비화할 수 있다. 삶의 영원한 화두다.

 흔히 논자들은 헤어짐보다 바람직한 만남에 대해 더 얘기하는 것 같다. 만남은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세속적 만남과 비세속적 만남이 있다. 자연이나 우주, 범신과의 비세속적 만남 중에 영원한 만남이 있을 수 있을까. 이기론을 떠나, 이승에서의 정신적 만남도 결국 육신처럼 사라질 것인데 말이다. 세속적 만남은 취미·직업 등등에 따라 분류할 수 있는데, 필자의 경우 요즘은 문예적 만남이 주를 이룬다. 자신의 취미와 같은 평생 직업을 가지고 은퇴 후에도 그런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좋은 만남이라고 하겠다. 지난 4월 14일에는 충주 수안보를 다녀왔다.

 필자가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을 맡으면서 제정했던 ‘수안보온천 시조문예축전’이 어언 5회째가 되었다. 온천시조문학상 소개 및 심사평을 했다. 한 지역을 제재로 하여 수상한 시조작품이 1백여 편이 넘었으니, 이것으로도 장차 이 지역의 소중한 정신문화적 자산이 될 것이라고 한 바 있다. 시조시인 및 수안보 주민들과 두 해 만의 살뜰한 만남이 있어서 보람찼다.

 타인과의 진정한 만남은 처음 사귈 때의 상황이 바뀌어도 오래도록 좋은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망년지교―나이나 성별을 초월하여 맺어지는 만남도 달리 보인다. 일방이 현직을 떠나거나 어려워졌을 때 만남이 단절되는 것도 보았다. 만취한 상태에서 홧김에 던진 한마디로 단절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공자의 제자 안영은 오래도록 상대방을 존경해야 한다고 했나보다. 요사이는 온라인상의 만남이 상당하다. 오프라인상의 만남은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니 시간은 들어가나 보다 정감이 갈 수 있다. 외로움이 달래진다. SNS, 포털 등 온라인상의 만남은 문자나 음성으로 빠르고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다.

반면에 군중 속 고독은 깊어진다. 심하면 외로운 늑대가 될 수도 있다. 핵가족화와 혼밥족 시대의 비애다. 작금 SNS를 많이 쓰는 사람이 적게 쓰는 사람보다 더 우울하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헤어짐에 대해서도 만남과 같이 여러 경우로 나누어 따져볼 수 있다. 지금은 백세 시대, 얼마 전 호주의 생태학자 데이비드 구달은 104세로 스스로 안락사했다.

 몇 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차마 편히 가시라 말 못하고, 고이 보내드리지 못한 게 가슴에 맺혀 있다. 5월의 아카시아 향기처럼 그윽하고 품위 있는 봉별이 더 많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본다. 다음 달 트럼프와 김정은의 역사적 만남이 헤어짐으로 바뀌지 않기를 바란다. 발코니의 사랑초 꽃이 봉별을 반복하듯 연일 오므렸다 피곤 한다. 시조로 읊는다.

 <사랑초 꽃>
 잎은 온통 검불그레 죄 타도록 맘 졸이며
 
 날 지면 고개 숙인 채
 밤새워 기다리다
 
 해 뜰 때
 활짝 펴나는
 연분홍빛 고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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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의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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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밍웨이 (jmh8****) 2018-05-23 10:40:09

여운이 남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12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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