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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인간은 본래 자기 이익을 스스로 지킬 권리를 지니며, 자기 힘(능력)이 부족할 때에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권리도 갖는다(자연권). 사람을 뜻하는 한자의 ‘人(인)’은 서로 기대고 의지하는 모양을 형상화한 것으로서 인간은 서로 돕고 살아가는 운명체라는 뜻을 지닌다고 한다. 서양의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한 의미도 인간은 본성적으로 사회를 형성해 함께 돕고 사는 존재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따라서, 국가가 ‘사람들끼리 서로 돕지 못하게 하는 것’ 즉 ‘타인의 도움을 청하는 일 또는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금지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이며, 이는 원칙적으로 자연법(자연과 이성의 법)에 반한다고 볼 수 있다. 법철학자들은 법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관해 오랫동안 자연법론(自然法論)과 실정법론(實定法論)의 논쟁을 벌여 왔다.

 자연법론은 인간의 경험을 초월해 자연 내지 이성을 전제로 한 법이 있다는 입장으로, 자연법이 모든 실정법의 기초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 실정법론은 자연법론이 공허하고 추상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실정법 즉 인정법(人定法)만이 법이고, 실력(힘)에 의해 뒷받침된 규범이 법이라는 입장이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자연법론이 우세했던 시대도 있었고 실정법론이 우세했던 시대도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자연법론과 실정법론이 적절히 조화롭게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어떻든, 남을 돕는 행위는 인간의 본성 내지 자연법에 합당한 것으로서 기본적으로 ‘선행(善行)’이다.

 따라서, 국가가 ‘타인의 도움을 청하는 일 또는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금하는 것’은 자연법에 반하는 ‘악법(惡法)’에 해당할 소지가 크다. 다만, 남을 돕는 일이 모두 합법인 것은 아니다.

 우리 형법은 "타인의 범죄를 방조(幇助)한 자는 종범(從犯)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하고(제32조 제1항), 도주원조죄(제147조), 범인은닉죄(제151조), 위증죄(제152조), 증거인멸죄(제155조)를 규정하고 있다. 그 밖에도 돕는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들이 있다(국가보안법 제5조, 제9조 등).

 이처럼 비록 남을 돕는 일이라 할지라도 목적이나 방법이 정당하지 않으면 범죄가 될 수 있는데, 이에 해당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남을 돕는 행위는 선행으로서 널리 허용되고 권장되는 것이 마땅하다. 세상을 살다 보면 타인의 도움을 받을 일이 참 많다. 특히, 법적 분쟁에 휘말리거나 범죄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전문가의 도움은 매우 절실하다. 그런데, 변호사로부터 법적 도움을 받는 것과 별개로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단서·증거의 확보 등)을 위해 탐정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탐정업이 불법화돼 있어 국민들의 ‘도움 받을 권리’가 크게 제약돼 있는 바, 이는 ‘자연권’ 내지 ‘행복추구권’ 침해로 볼 수 있어 위헌성이 있다. 또한 탐정제도를 도입하지 않아 국민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할 국가의 당연한 임무를 해태·방기한 것도 ‘입법부작위’로서 위헌성이 있다.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탐정제도가 없는 유일한 나라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조하면서도, 우리나라 국민만이 탐정의 도움을 얻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참 어처구니없다. 사생활 침해의 우려가 크다는 이유로 탐정제도 도입을 반대하는 변호사단체의 주장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속담을 연상케 한다. 부작용이 우려되면, 이를 예방·최소화하도록 정교하게 입법하면 된다.

 부디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국민)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탐정제도를 조속히 도입해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증진해야 한다. 탐정제도가 도입되면, 변호사와 탐정이 협력해 공정·투명사회 구현에 시너지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또한 공권력(경찰·검찰)이 미치지 못하거나 효율성을 발휘하기 어려울 때 민간전문가(탐정)들의 역량이 실체적 진실 발견과 정의 실현에 기여할 수도 있고, 공권력 행사의 오류를 견제·시정할 수도 있다. 또 탐정제도를 도입하면 일자리도 크게 늘어난다. 문재인 정부는 탐정제도 도입에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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