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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등장하는 외계인은 우리와 다른 외모에 초능력을 지닌 존재로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영화 ‘언더 더 스킨(Under the skin)’의 에일리언에겐 특이사항이 없다. 인간의 외피를 두른 이 외계 생명체는 노동자 계급으로 살며 밤낮 없이 일만 한다. 여가나 취미활동 등 어떠한 유희적인 생활도 하지 않은 채, 생각을 읽을 수 없는 텅 빈 표정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이자 업무인 인간 남성 사냥만을 계속할 뿐이다. 영화 ‘언더 더 스킨’은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2013년 작품으로 실험적인 사운드와 미장센이 인상적이다.

 이 작품에 대한 소개를 찾아보면 ‘로라’라는 미녀의 탈을 쓴 외계인이 기근을 겪는 자신의 행성으로 보낼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 지구에서 남성들을 사냥한다는 설명이 쓰여 있지만, 사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왜’라는 질문마저 무색할 만큼 내러티브가 모호하다. 여주인공을 비롯해 이름이 불려지는 이가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에 외계인의 이름이 ‘로라’인지조차 알 수 없다. 다만 숱한 모호함 속에 분명한 것은 매력적인 여성의 외피를 쓴 에일리언이 남성을 유인하면, 그 남성들은 검지만 동시에 투명한 액체에 빠져 피부만 남긴 채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인간이 아니기에 비인간적인 그 행동들은 그녀의 입장에선 타당성이 있었다. 그러나 여러 차례 자신의 일을 반복하던 에일리언은 인간사회에서 생활하고 그들의 감정에 동화되면서 자신이 맹목적으로 행하던 일에 의문을 품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모든 것이 달라진다.

 영화 ‘언더 더 스킨’은 외계인의 시선에서 본 인간세계를 다룬 작품으로, 일반적인 SF 영화가 우리의 눈으로 에일리언을 바라보는 것과는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명확한 인과관계와 잘 짜인 서사구조를 기대한다는 것이 애초에 잘못된 접근임을 영화를 다시 볼 때 깨닫게 된다. 불친절해 보이는 이야기, 신비롭지만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 번에 읽히지 않는 상징적인 이미지, 불협화음을 동반한 낯선 사운드 등은 전반적으로 영화로의 몰입을 방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해는 다분히 고의적인 것으로 연출 의도와 작품의 지향점을 나타내는 표식이라 하겠다.

 즉, 이 작품은 기존의 상업영화와는 다른 곳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것이다. 익숙하고 친근하며 화려한 볼거리와 재미로 무장된 영화들은 오락으로서 그 의미가 있다. 하지만 ‘언더 더 스킨’은 일반적인 영화 보기의 공식을 뒤집어 관객으로 하여금 무엇을 보고 있으며 또 듣고 있는지, 어떤 이야기가 왜 저와 같은 방식으로 전개되는지를 의식하게 한다. 그리고 이는 감각을 일깨운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익숙할 때 어제와 오늘은 구별되지 못한 채 관성처럼 흘러간다. 하지만 낯선 세상을 마주하는 순간, 삶의 한가운데 선 자신과 생생하게 마주하게 된다. 영화 ‘언더 더 스킨’은 피부 아래서 잠자고 있는 감각을 깨운다는 측면만으로도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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