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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레토릭(rhetoric)

김상구 청운대학교 대학원장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8년 05월 28일 월요일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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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구 청운대학교 대학원장

마음속으로만 끙끙 앓던 화병이 우울증이 되기도 하지만, 순간 올라오는 분노를 참지 못해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의 두 자녀처럼 국민의 공분(公憤)을 사기도 한다. 3년 전 ‘땅콩회항’사건으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대중 앞에 고개를 숙였고, 이제는 그녀의 동생과 어머니의 갑질이 미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조양호 회장 일가족이 경찰 수사 대상이 되고 있다니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 톡톡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타자를 향한 거친 언사와 삿대질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잘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내뱉는 언사에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했다가 다시 개최하기로 하는 해프닝을 연출하고 있지만, 그 감정의 밑면에 흐르고 있는 것은 그들이 쏟아내는 ‘엄청난 분노’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협상의 달인’이라는 트럼프의 ‘거래의 기술’도 염두에 둬야 할 것 같다. 다른 속뜻이 있겠지만 겉면에 드러난 이유는 분노 때문에 마주 앉아 협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거친 언사는 분노를 함의하고 있다.

 언어는 인간이 짐승과 분별될 수 있는 주요한 수단이다.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말처럼 언어가 거칠다는 것은 그의 내면세계가 곱지 않다는 방증이다. 북한의 방송을 들어 보면 ‘불바다를 만들겠다’, ‘아둔한 얼뜨기’라는 식의 막말들이 격한 어조로 사용되고 있다. 독한 말들이 일상어를 이루면 그것을 듣는 개개인의 내면세계도 그 언어의 자장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북한도 분노를 표출하는 ‘레토릭(수사법(修辭法))’을 바꿔야 한다.

 로마시대 세네카(BC4년 ~AD65년)는 몸이 허약해 폐결핵과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로마 최고 권력기관인 ‘로마 원로원’의 일원이 됐다. 클라우디스 황제 때 그는 고소사건으로 코르시카 섬, 캡 코르세(Cap Corse)에 8년 동안 유배됐는데 그곳 사람들은 유배 온 그를 푸대접했다. 부와 명성을 누리다가 그곳으로 쫓겨 온 그가 분노를 드러낸다면 그곳에서 쫓겨 날지도 모를 운명이었다. 그래서 마음 다스리며 쓴 글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분노에 관하여’다. 그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타자에게 발산한 것이 아니라 그 분노를 스스로 응시한 것이다. 세네카는 이렇게 말한다.

  "분노보다 우리를 마비시키는 것은 없습니다. … 분노는 자신이 패했을 때도 결코 물러서지 않습니다." 분노의 본질을 말한 셈이다.

 로마 철학자였던 플루타르코스(AD46 ~AD120)도 ‘분노의 억제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분노는 자신을 병들게 하고 상대방에게 반항심만 불러 일으키게 될 뿐이라고 언급한다. 분노와 격정에 휩싸이는 사람을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에서 선원들이 버리고 떠난 배에 비유하고 있다. 요동치는 분노를 다스리는 방법은 화가들이 그림을 마무리하기 전에 거리를 두고 그림을 한번 살펴보는 것처럼, 한동안 마음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분노는 중요한 일뿐만 아니라 농담, 장난, 웃음 등과 같은 사소한 것에서 발생하니 디테일을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요샛말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다. 화를 참지 못했던 어느 권력자는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가 자신을 몰라본다고 바닷물에 낙인(烙印)을 찍기도 하고, 산을 베어 바다에 버리겠노라고 위협하는 우스꽝스런 짓을 했노라고 플루타르코스는 일러준다.

 서양문학 시초라고 할 수 있는 호메르스의 「일리아스」 첫 행("분노를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도 아킬레우스의 분노에 관한 노래라고 할 수 있다. 트로이전쟁도 분노로 시작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셈이다. 일리아스 이래로 많은 문학 작품들이 분노를 주제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분노는 인간 정서의 근간을 이루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어떻게 조절하느냐가 중요하다. 조절에 실패하면 ‘분노조절장애’다.

 멧돼지를 쉽게 눕히는 사람은 레슬링선수가 아니라 여자와 아이의 부드러운 손길이라고 플루타르코스는 말한다. 분노가 광기와 섞이면 비극의 소재가 될 뿐임을 역사와 우리의 현실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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