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 연구소장1.jpg
▲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번복(飜覆)이란 입장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말이다. 당(唐)의 대표적 시인 두보(杜甫)는 ‘빈교행(貧交行)’이란 시에서 ‘손바닥 뒤집으면 구름이요 엎으면 비가 되니(飜手作雲覆手雨) 이처럼 변덕스러운 무리들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대 보지 못했는가. 관중과 포숙아의 가난했던 시절의 사귐을. 요즈음 사람들은 이 도리를 흙같이 버리고 만다네’라고 읊었다. 번수(飜手)는 손바닥을 위로 펴는 것, 복수(覆手)는 그 반대로 손바닥을 아래로 뒤집는 것을 말한다. 변덕스러운 소인배들의 우정을 일컫는 ‘복우번운(覆雨飜雲)’과 번복은 여기서 나왔다.

 요 얼마 전 우리는 판문점에서 열린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공동 발표에 한껏 들떴다가 6월 12일에는 마침내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소식에 그야말로 하늘 높이 붕 떴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급전직하를 맛보게 됐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거친 언사와 비난에 대해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취소한다’는 발표를 접한 것이다.

 북핵 25년. 위기와 기회가 반복돼온 그간의 곡절을 충분히 겪었으나 아연실색할 노릇이었다. 혹여 협상에서는 상대를 설득하다가 위협하고, 선동하다가도 슬그머니 물러서고 하는 밀당의 책략,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은 신기막측(?)의 협상 달인으로 강력한 승부 근성에 상대방 후려치기, 예측 불가능 언행, 기발한 방식을 즐긴다는 그의 협상술일 가능성을 점치면서도 곧 손에 잡힐 듯했던 한반도 평화 공존이 얼마의 시간이 더 필요할까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그것도 순간, 다시 반전이 일어났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제2차 판문각 정상회담이 이뤄졌고 북미정상회담이 계속 논의된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정말 다행한 일이다. 아니 쌍수를 들어 환호해도 부족할 정도다.

 하지만 게임에는 규칙이 있다. 특히 갈등과 대립이 심화돼 전쟁 일보직전까지 갔던 한반도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는 협상에서 반드시 필요한 규칙, 상호신뢰의 원칙이 있다. 문 대통령, 김 위원장, 트럼프 대통령 세 사람 사이의 상호신뢰도 필요하고, 남북한의 국민과 지도자 사이에는 더욱 그러하다. 이런 판국에 무슨 ‘깜짝쇼’하듯이 하는 건 결코 협상이란 이름으로 미화돼서는 곤란하다. 세 분의 지도자 모두가 승자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원칙임을 분명히 해두었으면 한다. 노벨평화상 아닌 천하에 무슨 상을 탄들 그리 대단할까. 그것이 역사적 의미와 함께 세계의 이성으로부터 박수를 받으려면 결단코 제2의 ‘깜짝쇼’ 같은 일은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재언컨대 협상은 서로 주고받으면서 입장 차이를 좁혀가는 과정이다. 북한은 협상 분위기 조성을 위해 억류 미국인 3명을 석방했다. 비핵화 의지를 진정성 있게 보이려 미래 핵의 상징인 풍계리 핵 실험장을 폭파, 해체했다. 하지만 북한이 원하는 미국의 선제적 대북 체제 보장 조치는 보이지 않았다. 조치는커녕 신뢰할 수 있는 립서비스도 없이 일방적 취소를 했다가 번복했다. 우리는 지금 지구촌 모두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입장이다. 중국과 소통하고 러시아, 일본과도 소통해야 한다. 유엔과도 긴히 조율해야 한다.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은 자국의 이익이라는 점이 우선이겠으나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걸 삼척동자도 다 안다. 이걸 11월 중간선거나 노벨평화상 수상에 연관지어 자신의 협상 기술이나 뽐내려는 듯이 번복을 거듭하는 건 동맹국 한국이나 세계에 대해 예의가 아니라는 점이다. 북한은 일관성을 지키고 있는데…….

 오래전 나의 젊은 시절에 자주 듣던 얘기가 있다.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라, 일본은 일어난다." 음운적으로 말하기 좋아서였겠지만 우리의 민심이 여기에 담겨 있었다. 소련과 일본은 얘기할 필요가 없어졌으나 미국은 아니다. 과연 우리가 미국을 믿고 우방으로 여기며 살아가야 할 것인가? 가슴이 막혔다가 겨우 숨통을 텄다고 안도하긴 이르다. 곧 있을 7회 지방선거도 분권과 남북 평화공존이라는 시대의 출발과 떨어져 있지 않다. 냉정한 시각으로 소중한 주권을 행사할 때 안팎의 격랑 속에서 우리의 미래를 보다 밝게 해 줄 것이다.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