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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섭 인천시 지방이사관
저출산 고령사회 망국론이 풍미하는 지금 이 땅에 아이들이 많아지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악인 행복지수 밑바닥인 우리 아이들은 더 행복해질까.

 갖은 노력으로 아이를 더 낳은들 그 아이들은 여전히 어려서부터 갖은 학원을 전전할 것이고 부모는 천상천하 제 자식만 감싸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가르칠 것이고 그렇게 자라 사회에 던져진 아이들은 ‘지옥한국(Hell 조선)’의 아우성을 높일 뿐이라면, 청년실업과 산업현장 인력부족은 해소될까. 아이들이 늘어난들 그들이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공장이나 건설현장, 뱃일, 간호간병 서비스나 식당 설거지 일을 찾아갈까. 오늘의 구인구직 미스매치는 사라질까. 그 공백은 상당 부분 더 나은 삶을 위해 이 땅을 찾는 이주민이 메울 것이 분명한 현실이라면. 아이들이 많아지면, OECD에서 멕시코 다음으로 높은 우리나라 산업재해 사망자는 저절로 줄어들고 한 해 4천 명에 달하는 보육원 입소 아동도 줄고 OECD 최악인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은 절로 나아지며 미국 다음으로 저임금계층이 많은 한국 현실은 바뀔까. 세상 모든 것을 오직 나의 물질적 손익을 기준으로 재단하는 사회, 내 집값 떨어뜨리는 건 모든 게 혐오시설이고 대학생들 기숙사도 못 짓게 하면서 무슨 인구절벽을 탓하랴.

 OECD 국가들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사회갈등과 불신풍조를 가진 사회문화와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인구만 늘어난들 이 사회는 더욱 더 부박하고 각박한 사회가 될 공산이 크다.

 인구(人口)가 아니라 인간(人間)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자연의 생태계가 그러하듯 사람 사는 사회에서 인구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적정 규모가 필요하다. 그 적정성의 최우선 기준은 산업현장 인력부족도 연금재정 고갈도 아니다. 합계출산율이나 인구 대체수준, 학령인구, 생산가능 인구, 노인인구 부양비 같은 수치나 성장잠재력, 국가경쟁력 같은 거시 지표도 아니다.

 이 모든 물화(物化)된 개념들로 조립된 물신(物神)적 인구재앙 담론이 정작 말하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있는, 이 땅에 한 사람 한 사람, 사람들과 사람들의 삶, 그리고 오로지 내 삶뿐만이 아니라 내 옆에서 함께 살아가는 다른 사람(他人)의 삶들이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가 인구 적정 규모의 최고 기준이 돼야 한다. 오로지 나와 내 식구, 내가 속한 집단만의 좀 더 나은 삶, 안온과 풍요를 대물림하고 영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숙주로서 희생이 돼 줄 더 많은 인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우리들 무의식의 저변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말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한다.

 주차전쟁, 입시전쟁, 취업전쟁, 피서전쟁, 청약전쟁. 경쟁이 도를 넘어 전쟁이 되는 순간 모든 문제해결의 근본 방식이 전환된다. 수단과 방법이 불문에 부쳐지고 정상과 비정상이 뒤바뀌며 원칙과 규칙이 무시되고 목표가 수단을 정당화한다. 삶의 곳곳이 전쟁(戰爭)인 사회에서 아닌 게 아니라 머릿수가 제일 필요할지 모른다.

 한국은 여전히 만원(滿員)이다. 적어도 1인당 국민소득이 수년째 3만 달러 언저리를 밑돌고 있는 탓을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머릿수의 부족으로 돌리는 게 지배담론이라면. 그리하여 이 사회의 영속을 위한 최후의 보루는 오늘 21세기에도 여전히 거대한 공장처럼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밀생(密生)시스템뿐이라는 담론이 득세하는 한 그렇다. 유아독존 각자도생의 말세적 징후에 대해서는 한 뼘의 성찰도 없이, 극소수의 강자가 여전히 지금도 넉넉한 곳간에 행여 고기 줄어들까 전전긍긍하는 약육강식의 담론이 이 사회를 지배하는 한 그렇다.

 희망의 단초가 보이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 정부가 지난 1월 23일 발표한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는 교통안전, 자살예방, 산업안전 기준을 대폭 강화해서, 한 해에 1만8천 명이 넘는 3대 분야 사망자를 5년 뒤에는 1만1천 명대로 대폭 줄이겠다는 게 핵심이다. 생명 존중 사회, 타인 존중 사회에 대한 성찰이 성숙할 때라야 우리는 더 많은 아이들을 떳떳하게 호명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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