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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옛날 부모님들, 특히 아버지는 말씀이 별로 없었습니다. 친구분들에게 자식을 소개할 때조차도 칭찬하는 법이 거의 없었습니다. 저도 아버지로부터 칭찬을 들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또한 꾸중을 들어본 적이 없고 매 한 번 맞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초리를 들고 매섭게 꾸지람하시던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더 어려웠습니다. 당시는 참 어려웠던 시절이었습니다. 전쟁 후의 후유증으로 온 나라가 빈곤에 허덕이고 있을 때였으니까요. 더구나 십남매를 둔 부모 입장에서는 자식들 입에 풀칠이라도 해주는 것이 최고의 가치였을 겁니다.

저는 그 중에 아홉 번째였습니다.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서예뿐이었지만, 당시 나라 사정에 비춰보면 서예만으로 먹고 살기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늘 배가 고팠습니다. 그때는 갈치가 참 쌌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갈치 한 토막이 김치밖에 없던 밥상에 놓이곤 했습니다.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요. 그러나 기다려야 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누님들, 형님들… 그리고 아홉 번째인 제가 먹을 차례가 되었을 때는 뼈 하나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자그마한 살점 하나만이 있었습니다. 젓가락을 가져갔을 때 왠지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막내 동생의 눈초리였습니다. ‘다 먹기만 해봐라!’라고 말하는 듯한 그 간절한 동생의 시선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납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동네 식당에서 선짓국 한 그릇을 시켜와 아버지에게 드렸습니다.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잡숫게 했나봅니다. 아버지는 반만 드시고는 어머니에게 그릇을 슬그머니 밀었습니다. 어머니는 한 숟가락만 드시고는 큰누나에게 밀었고, 큰누나 역시 한 숟가락만 드시고는 동생에게 밀었습니다.

 이렇게 여덟 명을 거쳐 제 차례가 되었을 때의 선짓국 그릇에는 바닥에 깔린 국물만 남아 있었습니다. 숟가락에 조금이라도 더 담으려고 몇 번을 숟가락질을 했는지 모릅니다. 이때 막내는 저를 원망하듯 노려 보았을 겁니다. 제 바로 위의 형이 숟가락질할 때 제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제가 아빠가 되고 나서야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자식들이 그렇게 숟가락질을 하는 모습을 보는 아버지의 심정이 어땠는지를 말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그렇게 자란 우리는 사이가 참 좋습니다. 기다릴 줄 아는 지혜를 배웠기 때문일 겁니다.

아버지는 고민거리가 있을 때는 항상 눈을 감고 앉아 자신의 허벅지에 무언가를 쓰곤 하셨습니다. 아마 마음을 달래려고 그러지 않으셨나 싶습니다. 중학교 3학년이 되자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할 거니, 아니면 실업계로 갈 거니?"

 그때 저는 꿈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평소 기술을 배워야 굶지 않는다고 믿고 계셨습니다. 아직 잘 모르겠다고 말씀드리자, 그렇다면 실업계로 가면 어떻겠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12월이 돼 입학원서를 써야 할 때 친구들처럼 인문계를 가서 대학을 가야겠다고 결심은 했는데, 도무지 아버지에게 말씀드릴 용기가 나질 않았습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원서 마감 전날, 저는 씻지 못할 불효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렸거든요. "아버지가 저를 위해 해주신 게 뭐가 있어요?"

 이십 분가량 말도 되지 않는 거친 말을 아버지에게 쏟아내고는 머리를 숙인 채 아버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동안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두려웠습니다. 가만히 고개를 들어 아버지를 올려다보니, 눈을 감고 허벅지에 글을 쓰고 계셨습니다. 이윽고 아버지의 대답이 들립니다. "그럼 어서 인문계 입학 원서를 구해 오너라."

 먹고 살기 어려웠던 그 시절, 자식들 먹여 살리려고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런데도 그런 것을 모르는 철부지 자식의 거친 말에 하실 말씀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아빠가 된 지금의 저는 제 자식에게 과연 그렇게 기다려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아버지의 그 기다림이 죄를 조금이라도 덜 짓고 살게 한 힘이 되었다는 사실을 제가 어른이 된 뒤에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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