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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계봉 시인

5월 26일 오후 세 시, 남북 정상들은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첩보작전처럼 은밀하고도 전격적인 만남을 가졌다. 지난 4월의 1차 정상회담 이후 꼭 한 달 만의 일이다. 미국이 북미회담을 돌연 거부함으로써, 모처럼 불붙은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희망의 불꽃이 사위는 것이 아닌지 모두가 아쉬움과 불안함에 맘이 편치 않을 때 이뤄진 뜻밖의 회담이었다.

 주말을 맞아 다소 이완된 기분으로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던, 혹은 야외에서, 술집에서, 야구장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주말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많은 국민들은 다시 한 번 ‘이 뜻밖의 만남’에 대해 관심을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난 4월 27일, 북한의 ‘최고 존엄’이 성큼성큼 판문각 계단을 내려와 분사분계선을 넘은 후, 남한의 대통령과 포옹을 하고 악수를 나누는 장면은 엄청난 감격을 동반한 놀라움 그 자체였다. 마음만 먹으면 그토록 쉽게 넘나들 수 있는 한 줄 분계선을 넘기까지 왜 그리도 심한 적대와 의심, 두려움과 망설임의 시간을 보내야 했는지, 한편으로 서글픈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회담 과정에서 두 정상이 보여준 관습적 의전의 틀을 깬 파격적 행보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그러한 장면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물론 그날 이후에 전개된 일련의 과정들은 판문점에서의 극적 장면처럼 아름답게 진행된 것은 결코 아니다.

 한반도 문제는 남북이 주체가 돼 풀어가야 한다는 당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현실의 정치 지형과 힘의 관계가 그러한 주체적 해결 가능성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경찰을 자임하고 있는 미국과 현재 새로운 대(大) 중화(中華)의 기치를 내걸며 약진하는 중국, 한때의 영화를 회복하려는 러시아 등 구시대 냉전의 주체들은 표면적으로는 ‘핵의 위험성과 세계 평화’를 거론하고 있지만 사실 남북의 긴장이 계속돼야만 그들이 그동안 확보해 왔던 전략 전술적 이익을 계속적으로 선점할 수 있기 때문에 여전히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는 테이블, 그 상석(上席)에 앉으려 혈안이 돼 있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슬픈 것은 민족의 자존을 내팽개친 채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미국에 의존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세력들이 아직도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남북 최고 지도자 간의 발 빠른 행보에 대해서도 일부 종편과 정치세력들은 시샘과 억측과 견강부회를 통해 회담의 의미를 폄훼하며 자신들의 반통일적 속내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긴 하지만 그것은 도도한 세계사적 흐름을 읽지 못하는 단견의 소유자임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자 역사의 수레 앞에서 앞발을 휘두르는 가엾은 사마귀의 행동에 다름 아닌 것이다. 단언컨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한민족 통일은 당리당략이나 특정 정치 세력의 기득권보다 우선하는 것이다. 어떠한 경우든 국가와 국가의 만남에서는 나름의 정치적 실리를 저울질하게 마련이다.

 만약 미국이 순수하게 세계평화를 위해 대승적으로 저리 오버하고 간섭하고 겁박을 일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너무도 순진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남과 북의 만남은 분명 각각의 요구가 부합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공멸보다는 공생의 길을 도모하는 것이 각각의 체제를 위한 현명한 판단이라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제 남북은 인정할 것은 서로 인정하면서 한반도 평화정착, 더 나아가 종전선언의 역사적 순간을 앞당기기 위해 좌고우면하지 말고 당당하게 뚜벅뚜벅 걸어 나가야 할 때다.

 통일은 더 이상 노랫말이나 꿈속의 염원으로만 끝날 수는 없다. 그리고 통일의 그날을 앞당기는 주체는 미국도 중국도 아닌 바로 남과 북 민중들 자신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 차례에 걸친 만남에서 보여준 남북 두 정상이 나눈 뜨거운 포옹과 끈끈한 악수는 분단 당사자인 남과 북의 민중들이 얼마나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그 전제로서의 비핵화를 소망하는지를 전 세계적으로 웅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그날’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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