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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현린 주필

온통 사방이 비리로 얼룩진 우리 사회다. 도통 맑고 푸른 청정지역이라고는 단 한 곳도 보이질 않는다. 온 세상이 홍진으로 뒤덮혀 아무리 혼탁해진다 해도 사법권(司法權)을 행사하는 법원(法院)만은 독야청청하기를 바라는 국민들이다. 근자 들어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특별조사단 조사 결과 공표 이후 국민들은 사법에 대한 불신으로 허탈감에 빠져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달 31일 스스로가 담화문을 통해 "특별조사단이 발표한 참혹한 조사 결과로 심한 충격과 실망감을 느끼셨을 국민 여러분께, 사법행정권 남용이 자행된 시기에 법원에 몸담은 한 명의 법관으로서 참회하고, 사법부를 대표하여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라는 표현으로 국민들에게 사과를 표했다.

 담화문 중에 ‘자행’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자행(恣行)은 ‘제멋대로 방자하게 행동하거나 일을 저지르는 행동이나 일’이라는 뜻이다. 사법 수장(首長)으로서 ‘자행’이 있었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사법부가 위기에 처했다. 드러난 의혹이 사실로 규명될 경우 단순한 수선(修繕)이 아니라 헐고 새로 짓는 재건축(再建築)이 요청되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불거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 "대법원 재판이나 하급심 재판에 부당하게 간섭하거나 관여한 바가 없었다. 재판을 흥정거리로 삼아 거래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하게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금에 사법부 전임과 현임 수장 간 대립 양상을 보이는 사법사상 초유의 기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목도(目睹)하고 있자니 가히 점입가경이다. 단순한 내홍으로 축소시켜 잠재우려 해서는 결단코 안 된다.

 법관은 헌법상 독립이 보장된 기관이다. 우리는 헌법 제101조에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 동법 제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라는 등의 조항을 두고 있다. 게다가 제106조에 가서는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라고까지 하여 신분도 엄격히 보장돼 있다.

 이러한 신분의 법관이 재판에 임함에 있어 외부의 영향이 있다 하여 ‘법관의 양심’이 좌우된다는 것은 언감생심, 상상도 못할 일이라 하겠다. 그렇게 된다면 ‘법관의 독립’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더더욱 진상은 밝혀져야 한다.

 신뢰는 얻기는 어려우나 잃기는 쉽다. 사법 전체의 명예가 걸려 있는 이번 사법파동이다.

 사법부는 시비곡직(是非曲直)을 가리는 기관이다.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는 가려져야 한다. 대법원, 고등법원, 지방법원 할 것 없이 법원 곳곳에 걸려 있거나 조성된 조형물 중에는 정의를 상징한다는 해치(해치)상과 디케(Dike)상이 있다. 주지하다시피 해치는 ‘시비(是非)나 선악(善惡)을 외뿔로 판단하여 안다는 상상의 동물’을, 디케의 가려진 눈과 저울과 칼은 사사로움에 구애됨이 없는 공정한 재판과 엄격한 처벌을 의미한다. 이렇듯 스스로가 정의의 상징을 재판의 표상으로 삼고 있는 사법부다. 그렇다.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사안의 진위를 밝혀야 한다.

 오늘 예정돼 있는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 회의’에 이어 7일 열리는 ‘전국법원장간담회’, 11일 ‘전국법관대표회의’ 등이 사법 발전과 현안 의혹 해소에 보탬이 돼야지 결코 흐지부지 넘어가려 해서는 안 된다.

 사법부가 재판 사건을 놓고 거래를 한다? 어느 나라 얘기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흥정할 것이 따로 있다. 우리의 사법문화 수준이 겨우 ‘재판 흥정’이라는 해괴한 말이 나오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가. 사실이라면 필자는 자괴감을 지울 수가 없다. 이는 국제 사법사상에도 그 유례가 없는 치욕스러운 우리의 ‘사법오명(司法汚名)’이 아닐 수 없다.

 ‘재판 거래’라는 신조어를 창출한 금번 사법파동이다. 국민들이 믿는 최소한의 신뢰마저 저버린다면 우리 사법부에는 더 이상 희망은 없다. 한치 의혹 없는 규명으로 실추된 사법 위상을 바로세우고 거듭나는 계기로 삼을 것을 재삼재사 촉구한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인권 보장은 말할 것도 없고 나라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된다.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공직자는 의심받는 것만으로도 이미 명예는 실추된 것이다. 하물며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있어서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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