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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섭 문학박사

조선은 여러 가지 사회 안정화 정책 차원에서 ‘환곡제도’를 유지했다. 조선 후기로 오면서 이 제도는 조세 기능을 했다. 국가에서는 이를 관리 운영하는 비용을 부담하게 됐다. 환곡의 수세 문제가 백성의 부담으로 작용했고 백성들의 이에 대한 불만은 커져만 갔다. 19세기에 빈번한 민란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1794년(정조 18) 양주(楊州)의 북한산성(北漢山城)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사망자는 북한산성의 환곡 담당이던 서필흥(徐弼興). 그는 환곡을 거두기 위해 같은 집안사람에게 멋대로 대신 갚게 했다. 이에 주민들은 강력히 반발했고, 결국 살인사건이 터지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1794년 1월 어느 날, 서필흥은 김이수(金履水)라는 사람과 함께 양주에 사는 김끗손(金唜孫)에게 북한산성의 환자곡(還上穀)을 받으러 갔다. 당시 김끗손은 환곡을 갚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서필흥은 독단으로 김끗손의 팔촌인 김상필(金尙弼)에게 대신 납부를 요구하고, 농사짓는데 요긴하게 쓰이는 소(牛)를 강제로 징발해 갔다. 김상필은 격분했고, 마을 사람들도 함께 항의했다. 달라, 못 준다에서 시작된 싸움은 점점 격화돼 이웃에 사는 함봉련, 김대순(金大順) 등이 서필흥과 김이수를 주먹다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싸움 끝에 서필흥은 죽고 김이수는 달아났다. 서필흥의 사인은 심장 상처와 왼쪽 늑골 손상으로 판명됐다. 주범으로 함봉련이 지목돼 1794년 12월 최종 심리 결과에 따라 사형이 선고됐다. 소를 빼앗겨 가장 격분해 심하게 구타한 김상필과 김대순 등은 무죄로 석방됐다.

 이 사건은 많은 의문을 남겼다. 함봉련이 처음에는 죄를 인정했다가 이를 번복하고 모함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가장 흥분해 구타한 사람은 김상필이다. 가슴을 때리고 넘어진 서필흥을 짓이겼다. 사건 이후 여러 정황도 석연치 않았다. 구타 당한 서필흥은 30리를 걸어서 집에 도착했고, 사건일로부터 12일이 지나 죽었다.

 정약용 선생은 1799년 5월 형조참의로 있으면서 정조의 명을 받아 이 사건을 재심의했다. ‘함봉련옥사계’라는 글을 보면 선생은 사건을 원점에서 재검토했다. 검안서(檢案書)를 세밀히 검토하고 증언과 증거 능력들을 꼼꼼히 따졌다. 선생의 결론은 논리적이었다. 피해자는 죽기 전 가슴을 쳐서 그 자리에서 피를 토했다. 함봉련은 땔나무를 지고 돌아오는 길에 그 등을 밀었다. 이 경우 사인이 되려면 상처가 뒤에 있어야 하는데 검안서에 상처는 가슴에 있었다. 정황과 검안서를 검토한 결과를 토대로 문제점을 발견했다.

 구체적 목격자도 없고, 확실한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피해자가 죽기 전 김상필이 가슴을 발로 짓이겼다고 유언을 남겼지만, 초동수사에서 중요히 다뤄지지 않았다. 단지 김끗손과 김상필의 부인이 증언한 내용을 함봉련을 살해자로 결정했다.

 선생은 피의자로 의심받는 사람이자 이해 당사자를 객관적인 증인·증거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종합적 판단으로 정조에게 함봉련의 무죄로 재심해야 한다는 건의를 했고, 함봉련은 즉시 풀려날 수 있었다. 이처럼 선생은 명확한 초동수사와 충분한 현장 확인, 정확한 검시와 검증, 객관적인 증거 분석, 증언의 신뢰성을 토대로 함봉련 사건을 해결했다.

 선생의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수사는 ‘흠흠신서(欽欽新書)’에서 여럿 볼 수 있다. 선생은 ‘목민관은 하늘의 권한을 받아, 중간에서 선량한 사람을 편안하게 살게 해주고 죄지은 사람은 잡아다 벌주는 것이니, 삼가고 두려워할 줄 모르고 털끝만한 일도 세밀히 분석해서 처리하지 않고, 소홀히 하거나 흐릿하게 하면 살려야 하는 사람을 죽이고 죽여야 할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라며 전문성과 수사의 신중함을 강조했다. 인권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복잡해진 현대 사회에서 사건사고는 끊임이 없다. 사회 전반적으로 갈등이 깊어지면서 흉악한 범죄도 많아졌다. 이러한 사건들 속에서 인명은 소홀히 여겨지는 느낌이다. 선생의 과학적 추리와 엄정한 진실 규명이 인권, 인간 생명 존중의 정신에 있었음을 우리 모두 신중히 생각해봄은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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