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가장 위대한 복서 중 한 명인 무하마드 알리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것으로 유명했던 아웃복싱형 권투선수다.

 미국 캔터키주 루이빌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의 본명은 캐시어스 마셀루스 클레이 주니로 그가 살던 곳은 특히 인종차별이 심한 곳이었다.

 1967년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함으로써 세계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을 박탈당하고, 이로 인해 선수로서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시간을 안타깝게 흘려보내다, 1971년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알리는 조 프레이저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그는 그 경기를 앞두고 여러 차례에 걸쳐 자신의 승리를 장담, 그것은 그의 오랜 버릇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그는 3년 5개월 만에 링 위에 오르는 것이었고, 상대는 당시의 헤비급 챔피언이었다. 경기 결과, 알리의 예측은 빗나가고, 최선을 다했지만 3년 세월을 법정에 불려 다니며 권투를 못한 그는 15라운드 판정패를 당했던 것이다.

 그 경기가 끝나고 알리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 초대를 받아, 녹화 시작 전 방송국의 일부 관계자들은 그가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방청객이 야유와 비난을 퍼부을까봐 걱정했다. 자신이 승리할 것이라고 큰 소리쳤다가 보기 좋게 지고 말았으니, 분명 조롱거리가 될 만했다.

 그러나 알리가 녹화 현장에 나타나자, 방청객은 일제히 기립 박수를 치고 열렬히 환호를 보내며, 그를 용기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비록 경기 결과는 그의 장담대로 되지 않았지만, 그 용감한 도전 정신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힘든 운동을 접을 수도 있었겠지만 좌절하지 않고, 알리는 이렇게 끝나게 되면 자신은 ‘주둥이’만 살아 있는 ‘떠버리 복서’가 된다고 생각하며, 훈련에 훈련을 거듭해 3년 후 결국 프레이저를 누르고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알리는 1960년 로마올림픽 금메달과 프로 전적 56승 5패 20년 동안에 세운 이 기록에는 그 누구의 것과 다른 시련이 스며 있어 20세기 최고의 권투선수이자 최고의 스포츠맨으로 추앙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무하마드 알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시련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신념과 좌절을 딛고 일어선 끈기와 집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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